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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
마크 트웨인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펼치면 재미있는 경고문이 먼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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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에서 어떤 동기를 찾으려고 하는 자는 기소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추방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어떤 플롯을 찾으려고 하는 자는 총살할 것이다.
―지은이의 명령에 따라 군사령관 G. 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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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이야기에서 교훈을 찾지 않는다. 내가 찾지 않았는데도 억지스러운 감동에 기반한 교훈이 드러나면 그 이야기는 대개 바로 아웃이다! 하지만 동기는 제법 짐작해 보려 하고 플롯은 따지는 편이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소되어 총살당할 위험이 크다. 조심해야지! 마크 트웨인의 경고를 받아들여 남북전쟁 이전 흑인 노예제도의 부조리한 참상과 당대 사회상의(오늘날도 여전한, 허위와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한) 풍자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나에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제목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모험 이야기다. 모험! 얼마나 설레고 흥분되는 말인가. 실제로 모험을 감행하기는 겁났던(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린 시절, ‘모험’에 대한 욕구를 달래주었던 것은 이런 모험소설들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미시시피 강과 뗏목의 낭만적인 로망이 가득하다. 몇 날 며칠 뗏목을 타고 물살에 모든 것을 맡긴 채 흘러 내려가도 끝없이 이어지는 강을 상상하는 것은 평범하고 지리한 나날을 보내던 어린 나에게 느긋한 평화와 심장박동이 증가하는 흥분감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더군다나 고지대에 있는 우리 집에서는 고향을 감싸고 유유히 흐르던 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강한 날이면 강물이 반짝거렸다. 물론 길이와 유역 면적에서 세계 3, 4위를 다투는 미시시피 강에 비하면 샛강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톰 소여의 모험』의 속편 격인 마크 트웨인의 작품으로(하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문학사적으로 더욱 중요한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가 그토록 찾지 말라고 경고한 의미들을, 그래서 더더욱 찾았기 때문이다!), 톰 소여와 함께 인디언 조의 보물을 찾아 나섰던 허클베리 핀이 흑인 노예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는 모험기다. 허크는 술주정뱅이 아빠와(날마다 매질하고 교육받지 못하게 하고 남의 것을 훔치라고(빌리라고) 시키고 급기야는 톰 소여와 함께한 모험을 통해 들어온 자식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허크를 납치하고 감금하니, 세상에, 이런 부모가 어디 있나 싶었지만 오늘날 자기 아이를 학대하고 성폭행하는 흉흉하고 처참한 뉴스를 떠올리면 인간이 진저리 나고 무서워진다), 답답한 관습과 예절을 종용하는 후견인 더글러스 과부댁, 왓츤 아줌마를 피해, 짐은 가족과 영영 만날 길 없는 곳으로 팔려가지 않기 위해 뗏목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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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기를 낚았고, 이야기도 나누었으며, 때때로 졸음을 쫓기 위해 헤엄도 쳤습니다. 벌렁 누워서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서 유유히 흐르는 큰 강을 떠내려가는 것에는 뭐랄까, 일종의 엄숙함마저 감돌았습니다. 커다란 목소리로 지껄이지도 못할 것 같았으며 크게 웃음소리도 낼 수 없을 것 같아서 나지막한 소리로 킬킬대는 정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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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상상은 언제나 감미롭다. 얼마나 황홀하고 평화로운 공간인지, 얼마나 한가로운 시간인지. 하지만 허크와 짐에게 뗏목 여행은 값비싼 요트 여행처럼 안전하고 안락하지만은 않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밤에만 뗏목을 탔으며, 짙은 안개와 급류로 위험천만한 위기를 겪기도 하고, 뗏목을 잠시 멈추는 곳마다 온갖 사건에 휘말린다. 게다가 짐은 백인에게 붙잡힐까 봐 불안해하고, 허크는 짐이 자유로워지도록 함께하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확신할 수 없어 죄스럽다.
지금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을 소유한다는 것이, 급기야 사고판다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일임을 통감하지만(그러나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돈이 인간을 소유하고 부리고 사고파는데), 허크의 시대는 미국 남북전쟁 직전이다. 그러나 허크는 끝내 짐을 배반하지 않는다. 인간의 따뜻한 심장을 따라 짐이 자유를 찾도록 도와주고 자신은 “지옥”에 가는 길을 선택한다. 짐도 자기 자유를 위해 매정하게 제 몸만 사리지 않는다. 뗏목 여행 마지막 위기에서 허크와 짐은 톰 소여의 위험한 모험 놀이에 휘말리게 되는데, 이때 짐은 톰을 살리기 위해 다시 붙잡히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늘날로 치면 허크는 문제아 악동이고 짐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이지만, 그들은 낙천적이고 다른 사람의 고통에 민감하며 인간에 대한 연민과 휴머니즘을 간직한 멋진 짝이다. 허크와 짐이 경계 없이 나누는 우정과 인간애는 더없이 아름답다.
허크와 짐의 뗏목 여행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톰 소여와의 대소동으로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모험소설에 심취한 톰은 모험의 온갖 원칙을 들먹이며 허크와 짐에게 터무니없는 일들을 제안한다. 하지만 그토록 우스꽝스러운 일들을 모두 해내기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법, 그러자 톰은 암묵적인 상상을 한다. 그렇게 했다고 치자고. 이 부분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어릴 때 나의 모든 놀이도 대개 상상을 덧입힌 현실에서 이루어졌다. 누더기 옷을 화려한 드레스로, 호박을 근사한 마차로, 쥐를 위엄 있는 마부로 바꾼 요정 할머니처럼 내가 상상하는 순간 나를 둘러싼 일상적인 현실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특별하게 변화시킬 줄 아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법이 아닐까. 행복한 마법의 시간을 통과해 온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