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 있음은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자각된다. 두 눈에 들어와 박히는 모든 풍경과 물질, 두 콧구멍으로 흘러드는 모든 냄새와 향기, 두 귀로 흘러드는 모든 소리, 입과 혀로 맛보는 모든 맛, 온몸이 접촉하는 모든 느낌은 내가 펄펄 뛰는 심장과 끊임없이 인지하는 뇌로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살아 있는 어느 한순간도 감각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감각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고 때때로 망각되기까지 한다. 급기야 고통의 한계에 직면할 때면 그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감각을 저주하기도 한다.

다이앤 애커먼은 감각의 그토록 본능적인 작용을 ‘작은 축제’라고 이야기한다. 이 감각의 축제는 감각기관을 상실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늘 열리고 있다. 순간순간마다 열리는 그 감각의 축제에 참가하여 감각의 축복을 얼마나 즐기느냐는 순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다. 얼마나 감각을 향해 온몸을 열어두는지, 얼마나 감각을 다채롭게 활용하는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은 우리의 오감(후각, 촉각, 미각, 청각, 시각)과 공감각이 벌이는 감각의 향연에 우리를 불러들이는 고혹적인 초대장이다.

나는 시각의 기쁨과 고마움은 늘 느끼고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들은 대부분 ‘눈’ 없이는 결코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책 읽는 일부터도 그렇다(물론 읽는다는 행위에는 시각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글자들의 상징체계를 인식하고 통합할 수 있는 뇌의 해독 능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책, 못 읽는 남자』의 작가 하워드 엥겔을 통해 잘 알고 있지만). 청각을 이용한 오디오북도, 촉각을 이용한 점자책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책과 문자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시각의 세계다. 여기에서 소리 내어 읽기를 하면 청각은 시각의 세계를 한 차원 더 고양한다. 또한 책장을 넘길 때 느껴지는 종이의 촉감도, 얼핏 풍겨 나오는 종이 냄새도 책 읽기의 기쁨을 증폭한다.

우리 몸의 감각 체계는 무엇을 할 때 단 하나의 감각만 작동시키지 않는다. 그 무엇을 향유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그 감각들이 상승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감각들의 상승작용을 통해 생의 기쁨은 증폭된다. 다이앤 애커먼은 후각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해서 촉각, 미각, 청각, 시각에 이어 공감각으로 끝맺지만, 때때로 다른 감각들까지 넘나드는 것은 모두 그 때문이다. “세상은 얼마나 황홀하고 감각적인가”로 감각의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다이앤 애커먼의 명징한 은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들은 우아하고 세련됐으며 사랑스럽다. 감각에 대한 소소하고도 거침없는 호기심들은 귀엽고 지적이다. 모든 것이 궁금하기 그지없는 아이의 시선이지만, 그녀의 해박한 지성은 오롯이 드러난다. 다이앤 애커먼이 주최는 감각의 축제에서 그녀가 이끄는 대로 감각을 열어놓으면 “직접적인 삶의 감각을 피해 황량하고, 단순하고, 엄숙하고, 금욕적이며, 사무적인 일상으로 찌그러진” 우리 삶의 결을 되찾을 수 있다. 그녀의 말대로 감각이 생을 얼마나 아름답게 물들이는지에 절실해지고, 잊었던 혹은 놓쳤던 감각을 되살리고 싶어진다. 그것은 사랑이다. 감각은 우리가 소소한 생을 열정적으로 사랑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다. 

   
  감각은 인간을 확장시키지만 구속하고 속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랑 또한 아름다운 구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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