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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원의 도시들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은 뜸해졌지만 한때 서부를 무대로 한 총잡이들을 그린 영화가 대 유행했던 것과 여전히 개척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창작되고 있는 것을 본다면 골드러시 전후의 개척시대에 대한 미국인들의 환상은 여전히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듯 하다. 코맥 매카시는 <핏빛 자오선>에 이어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지대를 배경으로 <모두 다 예쁜 말들>, <국경을 넘어>, <평원의 도시들>로 이어지는 ‘국경 3부작’을 발표하며 대중문학의 영역에 머물러 있던 미국의 서부시대의 이야기를 고급문학으로 끌어 올리는데 힘을 보탰다. <평원의 도시들>은‘국경 3부작’을 마무리 짓는 작품인 동시에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들의 다시 만나는 무대이기도 하다. 각 작품마다 이야기가 독립되어 있어 따로 읽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존의 이야기였던 <모두 다 예쁜 말들>과 빌리의 이야기였던 <국경을 넘어>를 먼저 읽는 것이 등장인물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존과 빌리가 그들의 운명에 맞서는 방식은 서로 다른데 이것은 이전 경험에 크게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장을 팔려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은 후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가 사랑에도 실패하고 여러 일을 겪으면서 성장한 존과 덫에 걸린 늑대를 놓아 주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냉혹한 세계에 절망하고 상처받은 빌리는 엘페소 근처의 농장에서 말과 함께 서로를 다독이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강을 사이에 둔 멕시코의 도시 후아레스로 놀러 간 존은 매음굴에서 상처입은 영혼을 지닌 창녀 막달레나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매음굴에서 그녀를 빼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은 존이지만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혹한 현실 뿐이었다. 빌리는 이런 존에게 힘이 되어 주려고 노력하지만 존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혹한 운명 뿐이었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고 있던 빌리는 그 운명에 휩쓸리지 않고 빗겨갔지만 세상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으며 아끼던 존까지 잃게 된 그에게 남겨진 것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코맥 매카시가 그려 내는 서부의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하다. 사실적으로 묘사한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자연 속의 일상 속에 침입해 오는 감당해 내기 버거운 운명은 서사적으로 표현되어 서로 대비되며 강렬한 느낌을 전하고 있다. 코맥 매카시는 국경지대와 국경을 넘는다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사용해 인간이 잔혹한 운명 앞에 어떻게 변화하는 지를 보여준다. 사랑을 위해 국경을 다시 넘어가는 존과 운명의 잔혹함을 이미 알아 버린 빌리의 결말은 서로 다른 듯 하면서도 닮아 있다. 사랑 때문에 죽어 버린 존에게도 살아 남은 빌리에게도, 삶은 자기 자신만의 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