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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화해
장폴 뒤부아 지음, 함유선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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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현실 속에서는 당신은 거의 있지도 않아” 이 말이 내게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랑뎅 박사에게 안나가 말한 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지만, 그 관계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로 인해서 하루를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그런 관계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관계 때문에 우리 모두는 타협할 준비, 이성적으로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나는 전문가의 대답이, 내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려는 순간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고 나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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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는데 내가 폴 스테른이기라도 한 것처럼 울음 덩어리가 울컥 치솟아 올랐다. 마치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토록 철저히 거부당한 것처럼. 특별히 뭔가를 치명적으로 잃어본 적 없으면서도 나는 어떤 ‘상실’이든 그에 대해 아주 예민해지는 경향이 있다. 마주 사랑했고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고 믿고 있는데 내가 줄곧 바라본 그에게는 더 이상 나란 존재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래서 그를 생경하게 잃게 되는 비극. 공감에 무딘 내가 나도 모르게 폴에게 감정이입된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폴과 안나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새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삼십 년을 함께한 부부다. 그래서 충분히 사랑하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아내 안나는 돌연 남편 폴의 모든 것을 거부한다. “당신을 보지도 않고 당신 말을 거의 듣지도 않아. 내가 속한 현실 속에서는 당신은 거의 있지도 않아”라고, “폴, 나는 아프지 않아. 다만 내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 않고 살고 싶게 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당신이 가는 게 좋겠어.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나는 내가 돌볼 거야”라고. 더 이상 당신은 필요 없어, 라니 이보다 더 치명적인 존재의 거부가 있을까.
공교롭게도 폴의 직업은 죽은 영화 대본을 살리는 스크립트 닥터(Script Doctor)다. 다른 시나리오 작가의 실패한 원본을 조각내어 재배열하고 잘라내고 덧붙이며 깁는. 그러나 남의 죽은 영화 대본은 여기저기 손봐 살리면서도 폴은 언젠가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아내와의 잘못된 관계는 어쩌지 못한다. 생기 가득하고 삶의 의욕으로 넘치던 아내 마리는 어느 날부터인지도 모르게 무기력한 우울증으로 삶의 의미를 잃고 급기야 폴과 그들의 사랑도 부정하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폴은 시나리오라는 가상 세계에서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자기 능력을 발휘하지만 현실에서는 속수무책일 뿐이다. 게다가 형이 살아생전 그의 모든 세속적인 호화로운 삶을 비판했지만 막대한 유산을 남기고 죽자 형의 재산과 애인까지 거리낌 없이 누리는 노년의 아버지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눈물을 왈칵 쏟은 폴은 일을 핑계로 생경해진 아내와 가족을 벗어나 미국으로 더욱 도피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곳에서 그는 아내와 가족에게 더욱 옥죄이는 것 같다. 형의 죽음을 기점으로 평생 수호해 왔던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평생 매도해 왔던 형의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 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시도 때도 없는 아버지의 전화는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자신을 더 이상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현실의 아내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폴은 오히려 젊은 시절, 그들 부부가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아내와 꼭 닮은 여자 셀마 샨츠에게 빠져든다. 폴은 셀마를 아내와 따로 생각하지 못한다. 그에게 셀마는 아내의 분신, 가상의 아내다. 마치 아내와 가족은, 분리하려 해도 분리되지 않는 자신의 일부인 듯 폴은 현실의 도피처인 미국에서 끊임없이 현실의 아버지를, 그리고 아내를 돌아본다. 사랑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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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여전히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고, 내 책임을 따져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우리의 지난 삶을, 무의미하면서 내밀한 사소한 것들을, 어두우면서 빛나는 이미지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바다에 갔을 때 아버지의 배에서 아이들의 목소리와 함께 안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녀가 오래전에 썼던 향수의 이름과 그 향기를 알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보낸 지난 30년에 대해서 잊은 게 하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다. 말하자면 순간의 기억을 놓쳤다. 내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안나가 조심스럽게 멀어졌던 그때,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날들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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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폴은 자신이 놓친 것을 찾지 못한 채 있어야 할 현실의 자리로 돌아온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폴은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의심하지만 가능하다. 폴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장폴 뒤부아는 그것을 ‘이성적인 화해’라고 말한다. 조금의 의구심도 없이 화해의 요건이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아도 무언의 용인 아래 각자의 방식으로 적절한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일종의 현실적인 타협이라고. 폴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상처 입은 것은 그들과의 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놓쳤기 때문이다. ‘아주 중요한 것’은 폴이 그들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되어줄 것이었다. 하지만 폴은 끝내 ‘아주 중요한 것’을 찾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들은 화해한다. 그들 사이에 잃어버린 ‘아주 중요한 것’에는 잠시 눈감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이 함께하는 현실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성적인 화해’의 어감은 어딘가 개운하지 못하다.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으므로 덜 잃기 위해 화해하는 것은 현명하다. 도저히 잃어지지 않는 것들은 잃어서는 안 되므로... 여전히 사랑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