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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잿빛 풍경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사람들에게 초록빛 풍경은 그리움이고 꿈이지 않을까. 가토 유키코의 『꿀벌의 집』이 순식간에 내 눈길을 잡아챈 것은 초록빛 잎사귀들이 점점이 수놓인, 그토록 상큼한 표지였다. “표지보다는 내용이지!”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어도 이럴 때는 정말이지 속수무책이다. 그 표지에 기대어, 이 소설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부풀었다. 자연 속에서 니노미야 도모코의 농촌 명랑 순정만화 『그린』처럼 생기발랄하거나, 타샤 튜더의 매혹적인 정원처럼 아름답거나,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혹은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처럼 더욱 진지하게 자연과 깊숙이 조화하거나.
어쩌면 200쪽도 안 되는 분량의 소설에 너무 많은 것들이 구현되길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작가에 따라서는 쪽수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한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짤막한 단편소설인데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자연이 꾸밈없이 펼쳐지지 않는가.) 『꿀벌의 집』은 각자 자신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곰도 사는 깊숙한 산골에 자리 잡은 ‘꿀벌의 집’에 우연찮게 모여들어 꿀벌의 생체 주기에 맞춰 양봉하면서 그 상처를 보듬어 가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파리에 착색한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꿀벌이 지금은 노랑과 검정의 세련된 다지인의 사랑스런 곤충”으로 꿀벌에 대한 애정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 제법 섬세하게 그려지면서 인물들의 상처를 입은 사연도 조금씩 드러난다. 사실 자연의 치유 능력은 위대하다. 이에 좀더 집중할 요량이었다면 인물들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고 그 상처가 자연에 조응하여 치유되는 과정, 그리고 꿀벌의 집 사람들 사이의 감정과 에피소드를 더욱 풍부하고 세밀하게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모든 것이 급했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참 아름다웠다. 자연이 빚어놓은 매혹적인 풍경들을 묘사하는 글귀들을 읽고 상상하는 일은 즐겁고 또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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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리자 곧 시원한 파란색 꽃무리가 보였다. 도회의 공원에 피어 있는 수국과 비슷하지만, 자주와 분홍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파랑이다. 리에를 마중 나온 듯 절벽을 따라 높은 곳까지 줄지어 있었다.
두 사람의 발밑에서 작은 반원형의 논이 서랍을 조금씩 꺼내놓은 듯 계곡을 새기며 이어지고 있다. 수면에서 부드러운 빛이 흘러넘친다.
보라색 (라벤더) 안개에 싸인 넓은 공간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리에가 때때로 부딪히고 아픔을 느껴온 벽을 마법처럼 사라지게 했다. 이 이상한 감각도 라벤더 향기의 영향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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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부분은 읽다 보면 뭉클해진다. 따로 인용해 놓기에는 애매하지만, 분봉(分蜂)을 막기 위해 새로운 여왕벌이 될 왕대를 없애야 하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새 여왕벌과 한 무리의 꿀벌을 하늘로 띄워보냈다가 새로운 벌통에 맞아들이는 에피소드에도 마음이 따뜻한 기운으로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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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벌은 무리 안에서는 스타 연예인과 같은 존재다. (…) 그녀가 소중히 대접받는 이유는 많은 알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늘 어두운 둥지 속에 갇혀서 일벌처럼 야외로 날아다닐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산다면……. 상상만으로 소름이 끼쳤다.
(…)
“하지만 평생에 한 번, 그녀가 둥지를 나와 여행하는 시기가 있어. 성충이 되어 날개가 돋고 나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즉 아직 여왕이 되기 전인 공주 시절에 말이지. 그녀는 오후가 되면 하늘을 향해 날아올라 가는 거야. 거기서 수많은 수벌과 만나서 몇 마리인가와 교미를 하지. 이른바 파트너를 고르기 위한 여행이야. 넓은 하늘이 결혼식장인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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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부분은 개인적인 관심이 집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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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는 꿀벌 코너로 돌아와 최초로 읽을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아케미짱이 곁에 다가와 한 권을 뽑아 건넸다. 이 책이 상당히 재미있을 거예요. 저자의 이름에 리에는 놀랐다. 엉? 마테를링크라면 『파랑새』의 작가가 아니었나? 이 사람이 꿀벌 책을 썼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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