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진정으로 사랑스러운 소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지역신문 편집자로, 도서관 사서로, 서점 직원으로 문학회 회원으로 늘 문학을 가까이해 온 노부인 메리 앤 셰퍼는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으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소설인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딱 한 권을 남겼다. 문학과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책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그 책이 무엇을 담고 있느냐에 따라 나무에게 몹시 미안하기도 하고, 조금은 덜 미안하기도 하다. 메리 앤 셰퍼의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은 나무가 아깝지 않은 책이리라.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면 그녀의 바람대로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어 나무가 아깝지 않은 책이다.

소설 속 사랑스러운 인물들이 주고받은 편지글로 이루어진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편지들은 전쟁의 잔혹한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하여 전쟁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되돌려주는 칼럼을 쓰고 그 칼럼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 작가, 줄리엣 애쉬튼이 받거나 쓴 것들로, 대부분은 칼럼집을 출판한 출판사 대표 시드니 스타크와 건지 섬 문학회 사람들과 나눈 애정 어린 편지들이다.

줄리엣과 이들을 연결해 주는 소중한 매개가 되어주는 것은 역시 ‘책’이다. 줄리엣의 집필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믿음직스러운 오빠, 시드니는 물론이고, 건지 섬 사람들과의 인연도 한 권의 책으로 이어진다. 바로 찰스 램 수필집이다. 한때 줄리엣이 소장했던 책으로 서명과 주소가 적힌 찰스 램 수필집 『엘리아 수필선집』이 우연히 건지 섬에 사는 남자 도시 애덤스에게로 흘러 들어갔고, 도시가 찰스 램을 아끼는 마음으로 줄리엣에게 용기 내어 쓴 편지 한 통으로 아름다운 인연들이 이어진다.

건지 섬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나치스에게 점령당한 영국의 한 섬으로 그 점령기 5년 동안 영국 본토와의 연락이 완전히 차단된 섬이다. 줄리엣과 건지 섬 사람들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건지 섬 사람들이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라는 문학회를 통해 그 참담한 시절을 함께 어떻게 견뎌냈는지, 그리고 재치 있는 임기응변으로 ‘감자껍질파이 클럽’을 순식간에 만들어내어 독일군의 매서운 눈을 속인 용감한 여성,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엘리자베스의 기지로 만들어진 ‘감자껍질파이 클럽’은 찰스 램, 셰익스피어,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찰스 디킨슨, 애거서 크리스티의 마플 여사, 그리고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로(그 고양이 머핀의 깜찍한 환생 모험 이야기는 실제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인가? 그렇다면 제목은 뭐지?) 전쟁 전후의 상처 입은 사람들을 위무한다.

작가 메리 앤 셰퍼의 따뜻한 시선은 전쟁의 어둠 속으로 침잠하여 음울해지지 않고 그 어둠까지 감싸 안아 포근한 위안을 준다.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에서 외부인으로 건지 섬에 정착하게 되는 전쟁 전의 엘리자베스와 전쟁 후의 줄리엣 외에도 건지 섬의 선량한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매혹적인 개성으로 독자를 유혹한다. 그들은 전쟁의 그늘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유쾌함을 결코 잃지 않는 강인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 이름들을 일일이 늘어놓으며 찬사하고 싶지만, 일단 읽어보지 않고서는 입술 닳도록 이야기해 봐야 진실로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한 번을 읽든 두 번을 읽든 그들을 떠올리고 만나려면 몇 번이고 다시 책장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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