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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 - 제138회 나오키 상 수상작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8년 12월
평점 :
파국, 이것이 건강하지 못한 사랑의 필연적인 종착지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는 아버지 준고와 딸 하나의 기형적인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파국’을 전제한다. 세상 모든 관계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인 관계가 ‘피’로 하나가 되는 ‘가족’임에도 그들이 왜 불안정하게 흔들리다가 끔찍한 파국에 이르렀는가를 이야기한다. 파국이 곧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행복한 결말에 대한 기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전혀 품을 수 없는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이야기 속에서 파국으로 치닫는 인물들의 출구 없는 불행에 전염되는 일이다. 그로 인한 씁쓸한 기분이 끝내 개운하게 가시지 않고, 내가 용인할 수 있는 가치관의 경계에 눅진하게 들러붙는다.
『내 남자』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가족에게 금단인 영역으로 넘어선, 철저히 금기된 관계를 서술한다. 세상 모든 관계들에는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특히 이런 관계이기에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 도저히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것은 ‘가족’ 관계도 마찬가지다. ‘피’로 이어진 아버지와 딸이 건강한 가족의 자리를 벗어나 연인의 자리를 탐내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삐뚤어진 집착과 광기의 ‘근친상간’일 뿐이다. 어떤 사연을 구구절절 늘어놓아도 변하는 것은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피붙이’임을 알았던 준고와 하나의 관계라면 더더욱.
가족은 다른 관계에서 용서되지 않는 행동도 피로 이어지는 천륜의 사랑으로 이해되는, 모든 관계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최후의 보루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 맺기를 가족 안에서 배우고 무수한 관계로 넓혀 나가지만, 그로 인해 덧나는 상처들을 치료하기 위해 결국은 또 가족에게로 돌아온다. 그런데 준고와 하나는 최초의 관계, 가족에게서 고의적으로 배제되는 원형적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그에 대해서는 더 자세한 이야기가 없지만, 그들은 그렇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사쿠라바 가즈키가 그들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이 그런 식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노라 내세우는 사연이다(그러나 부족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자꾸만 다른 선택의 여지도 보인다). 건강한 가족애와 모성을 박탈당한 정신적 상흔은 지독한 고독감과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깊어지고 서로의 결핍감을 채워주기 위해 아버지로, 남자로, 아들로, 그리고 딸로, 여자로, 어머니로 가족의 경계를 넘어서고 만다. 정신도, 육체도.
하나는 “짐승처럼” 외친다. “우린 피붙이라고! 다른 사람과는 달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어딨어. 아버지와 딸 사이에!” 피붙이여서 해서는 안 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하나는 미처 모른 채 여자로 아버지, 준고를 탐했다. 피붙이여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 준고는 남자로 딸, 하나를 탐했다. 금단의 영역에 서로를 세워두고 그들이 맞은 것은 파국이다. 예견된 파국.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더 이상은 기대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