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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종말 리포트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가진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의 경우 주로 과학의 급격한 발전에 따른 인간성의 상실을 그려낸 작품이 많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수많은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과학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빛과 어둠을 함께 가져오지만 그 미래가 늘 밝은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어두운 부분이 부각되는 면이 많다.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소설이 더욱 충격적이고 우울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상상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설득력 있는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 정부에 의한 인류의 통제, 핵전쟁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인류의 종말과 변종 인류의 등장, 자연재해나 환경 이상으로 인한 인류의 위기 같은 것들은 디스토피아를 그린 과학소설의 클래식한 소재이기도 하지만 단지 소설 속의 상상이 아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그다지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이 될 수 있다.
과학이 발달한 세계는 특혜를 누리는 지배계급인 돔의 시민들과 지옥으로 여겨지는 돔 밖의 지역들로 구분되어 있으며 유전자 조작이 보편화되어 개조되지 않은 돔 밖의 평민들은 더럽고 위험한 존재일 뿐이다. 돔에서 태어난 지미는 학생 시절 글렌이라는 천재 소년과 만나고 글렌은 이후 회사에서 크레이그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일들을 진행시킨다. 지미는 회사에서 자신이 꿈꾸던 여인인 오릭스를 만나게 되고 천재 과학자 크레이그가 발명한 환희이상이라는 약의 실패로 크레이그와 오릭스는 죽고 그의 유전자 창조물인 크레이커들을 제외하고 인류는 대재앙을 맞는다. 살아남은 지미는 크레이커들에게 자신을 크레이그와 오릭스가 보낸 눈사람이라고 알려주고 크레이커들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다. 그곳에서 지미는 과거를 회상하며 고독한 삶을 이어가지만 어느 날 크레이커들에게 지미와 비슷한 존재가 다녀갔다는 말을 듣는다. 지미는 살아남은 인류 혹인 새로운 인류의 가능성을 예감한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인간종말리포트』에서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 때문에 파멸하게 되는 인류의 모습을 그린다. 젊음과 성적 쾌락은 인간의 아주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욕망이며 이 단순한 욕망으로도 인류는 파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눈사람의 회고를 통해 느릿느릿하지만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크레이그가 크레이커들에게 행한 유전자 조작은 인간 욕망에 대한 최후의 경고이기도 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작품을 통해 디스토피아는 인간 욕망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픽션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이 작품은 우리의 가까운 미래의 모습을 쉽게 연상시킬 수 있어서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