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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일본을 대표할 만한 독서광 지성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궁금했던 것은 순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도서관을 마련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도도한 눈빛을 빛내는 고양이의 거대한 자태를 건물 벽면에 그려, 일명 ‘고양이 빌딩’이라는 애칭까지 얻은 개인 도서관은 너무나 탐나는 공간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만으로 모두 4층 건물을 가득 채운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다. 그것도 모두 내가 적어도 한 번은 읽었고 앞으로도 종종 펼쳐볼 책들이라고 생각하면 황홀해질 지경이다. 소문으로 듣자 하니, 다치바나 다카시는 고양이 빌딩만으로도 책들의 공간이 모자랄 판이라 이웃들이 스스로 그의 책을 보관할 공간을 내어주겠다고 나설 정도라니, 이쯤 되면 질투를 넘어서 동경의 대상이 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일단 ‘책’이라는 말만 들어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다독가로 명성이 자자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다. 제목처럼 ‘나, 다치바나 다카시는 관심사의 변화에 따라 이런 책을 읽어왔다’뿐만 아니라 무엇 때문에 이토록 책을 과식하는지, 독서 목적이 무엇인지, 독서 방법은 어떤지, 책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을 마련하려고 얼마나 분투해 왔는지 이야기한다. 부제처럼 ‘다치바나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인 셈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나처럼 마냥 동경하던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괴리감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처음 흥분으로 재게 뛰던 심장 박동이 제 속도를 찾고, 책을 한 장씩 읽어 나가다 보면 ‘다치바나식’에 절로 눈뜬다.
책꼴을 갖추어 물리적인 형태로 책을 시장에 내놓는 편집자를 열외로 두고 책의 내용만 고려하자면 책의 생산자, 가공자, 소비자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생산자는 책의 내용, 즉 지식을 각 분야의 최전선에서 생산해 내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물론 책의 저자일 수도 있고, 책의 저자에게 직접적, 간접적으로 자신이 생산해 낸 지식을 제공한다. 가공자는 자신이 직접 날것의 지식을 생산해 내지는 않지만, 생산자가 생산해 낸 지식들을 조합하고 자신의 통찰을 가미하여 자기 식으로 가공해 낸다. 물론 이 사람도 책의 저자이다. 책의 저자가 순전히 생산자 혹은 가공자이기는 어렵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가공자’에 가까운 것 같다(물론 그의 모든 책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의 책 읽기도 가공자로서의 재생산을 위해 이루어진다.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그의 다독은 어느 순간 책의 ‘소비자’에서 ‘가공자’로 넘어선다. 철저히 ‘소비자’인 나는 그 간극이 낯설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다.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독서’라는 행위에 절대적인 목적과 방법이란 없을 것이다. 내 독서가 ‘즐거움’을 위한 소비적 성향이 짙다고 해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소설’의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지는 않지만 ‘효용’으로 대하고 이미 읽을 만한 소설은 다 읽었으니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자만한다고 해서, 그의 독서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는 ‘책’이라는 물건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의 책 읽기를 자꾸만 엿보고 싶어진다. 그에 대한 관심은 그런 개인적인 관음증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독서에 이처럼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이가 또 있을까. 다치바나 다카시의 독서에 열렬히 공감하든, 조금은 이질감을 느끼든,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는 독서로 시작하여 누구나 알아주는 지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에 대한 경탄을 불러일으키며 흥미롭게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