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루이스 레안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루어지지 못한 청춘의 첫사랑은 더없이 극적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대체로 격한 부침 없이 무료하게 살아가는 내내 ‘열정’을 되지피는 뜨거운 위안이 되어준다.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청춘의 풋풋한 사랑은 순수한 열정과 무모한 용기가 전부인 눈먼 사랑이다. 그래서 물불 가릴 줄 아는 이성으로 가슴을 서늘하게 식히고 손익을 계산하며 가슴이 뜨거웠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에게는 철부지 사랑이다. 추억 속에서는 아름다운 낭만이지만, 현실 속에서는 미친 짓인.

까마득한 시간을 지난 어느 날, 평생 가슴에 묻어두었던 첫사랑에게서 연락이 왔다. 딱 한 번만 더 만날 수 있길 갈망했지만 결코 만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연락이건만 덜컥 망설임부터 앞선다. 추억 속에서는 청춘으로 빛나는 그가 현실 속에서는 훨씬 남루하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 시절,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했어도 이미 그를 향해 두근거렸던 심장은 정상 박동을 되찾은 지 오래라는 것을. 시간의 무덤인 세월은 그토록 짙은 사랑도 끝내 퇴색시키고 잠재운다. 내가 안주한 현실에 균열이 생기기 전까지는.

몬세랏 캄브라도 겉보기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단란해 보이는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지만, 사고로 딸이 죽고 남편이 위선을 드러내어 다른 여자를 탐닉할 때까지 26년 동안 첫사랑 산티아고 산 로망을 자기 가슴속에 잠재운 채 지낸다. 죽은 줄만 알았던 그를 우연히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 몬세는 무작정 지금껏 자신을 농락해 왔던 현실을 박차고 산티아고가 있는 사하라 사막으로 떠난다.

열아홉, 부유하고 엄격한 집안에서 자란 몬세에게 가난한 자동차 정비공 산티아고는 달콤한 ‘금기’의 매력적인 존재였다. 부모의 눈을 속인 채 부나비처럼 무모하게 서로 다가들어 불타올랐던 그들의 열정적인 사랑은 지극히 사소한 오해로 깊은 상처를 남긴 채 파국을 맞고 만다. 그 이후 26년 동안, 몬세와 산티아고는 각자의 인생을 걸어간다. 몬세는 부모의 바람대로 의사가 되어 역시 엘리트 의사인 남편과 결혼하여 딸까지 둔 부유한 판박이 가정을 꾸린다. 산티아고는 몬세와의 이별 후에 스페인을 떠나 스페인 최후의 식민지 서사하라로 자원 입대하여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26년 후, 몬세가 회한 가득한 마음으로 긴 시간과 먼 거리를 돌아 청춘의 사랑, 산티아고를 찾는다.

26년 동안 몬세도 변했고 산티아고도 변했지만, 추억 속에서 변함없는 그들의 사랑은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애잔하게 펼쳐진다. 몬세의 현실과, 몬세와 산티아고의 과거와, 산티아고의 과거로 이어지는 시간의 미로를 한참 헤매다 보면 몬세와 산티아고가 26년이 지난 현실 속에 서늘하게 마주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추억 속 청춘의 빛나는 사랑을 남루한 현실로 불러들인 몬세의 무모한 용기는 그래서 더욱 애처롭기만 하다. 가슴 한 켠이 끝없이 시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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