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내게로 왔다 - 이주향의 열정과 배반, 매혹의 명작 산책
이주향 지음 / 시작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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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주향 철학교수의 『사랑이, 내게로 왔다』는 성서를 포함한 고전 명작 속 남자와 여자를 짝지어 ‘사랑’을 다양한 테마로 다각도에서 변주한다. 달콤한 명상적 문체로 사랑이 발휘하는 위대한 영향력을 조근조근 이야기하면서 짧은 글으로 깊은 사색을 이끌어낸다. ‘철학’을 하는 사람의 책답게 문장 하나하나 곰곰이 돌이켜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래서 금방 읽어낼 줄 알았던 책을 오랫동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열다섯 명의 커플들을 3개월에 걸쳐 촬영하여 15컷을 하나로 만든” 김아타의 사진(※표지사진)처럼, 이주향 철학교수도 모두 31편의 명작 속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지만 결국 근원적인 ‘사랑’로 통하는 서른세 쌍의 남녀를 찾아내어 어느 것으로부터도 오염되지 않고 변형되지 않은 태초의 사랑 하나를 형상화한다. 그녀가 원래 사랑은 이래, 라고 황홀하게 들려주는 순결한 사랑의 고귀한 모습은 감히 난 그를 사랑해, 라고 입에 담기가 무안할 정도이지만, 태초 이래 가벼운 사랑의 빈말들이 난무하는 오늘날까지도 사랑이 삶의 주제, 철학의 주제, 예술의 주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것은 사랑의 깊고도 무겁고 핵 때문이 아닐까. 모든 인간과 동물, 식물, 자연을 끌어안고 있는 대지의 중력처럼 태초의 사랑도 핵을 지녀 가벼운 사랑이든 무거운 사랑이든, 진실한 사랑이든 거짓된 사랑이든, 솔직한 사랑이든 편견 가득한 사랑이든, 세상의 모든 사랑을 끌어당겨 정화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사랑’이 난무해도 사랑 본연의 아름다운 힘을 잊지 않도록.

『사랑이, 내게로 왔다』에서 가장 재미있게, 흥미롭게 읽었던 꼭지들은 역시 내가 읽은 적이 있고 좋아해 왔던 커플들의 사랑을 들려주는 부분들이었다. 특히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애버트와 저비 스펜들턴,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의 제인 에어와 에드워드 로체스터,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의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J.R.R. 톨킨 『반지 제왕』의 톰 봄바딜과 금딸기 이야기. 이주향 교수의 사랑 접근법으로 재해석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새로움 그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사랑이, 내게로 왔다』는 커플들 중 대체로 여성과의 가상 인터뷰가 아주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이주향 교수의 질문에도, 명작 속 여성의 대답에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그녀가 에필로그에서 말한 대로) 느껴진다. 잡지 마감을 위해 글을 위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녀가 아끼며 보듬고 어루만져온 보석 같은 커플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풀어냈다는 것을 느낀다. 글로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진심이 아니었다면 아마 독자도 빛만 좋은 글에 공감하지 못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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