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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요즈음 같은 크로스오버가 지배하는 시대에 문학의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처럼 무의미해 보이는 것은 없지만 이 책 아사다 지로의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만큼은 기담류라는 분류에 넣고 싶다. 미스터리나 호러 같은 영문 이름표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책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아시아 특유의 정서(이 말도 얼마나 시대착오적 느낌이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울려 보인다)’일 수도 있고 『철도원』에서 보여 주었던 아사다 지로 특유의 감성일 수도 있다.
「인연의 붉은 끈」은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아도 부부의 연으로 이어져 있다는 인연의 붉은 끈이 끊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다. 부잣집 아들과 유곽 처녀의 맺어지지 못할 사랑은 동반자살로 마감하는 듯 했지만 여자는 바로 죽지 못하고 살아 남았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죽어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벌레잡이 화톳불」은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낳은 또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다. 부도가 나서 도피생활을 하는 비참한 현재의 자신이 아닌 부유한 시절의 나는 결국 내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다.
「뼈의 내력」은 집안의 반대로 결혼이 무산되고 자살하여 뼈로 돌아온 연인. 뼈가 된 연인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다.
「원별리」는 전쟁터에서 죽어버린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고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 죽은 남편과 달리 이미 늙어버린 아내는 남편에게 꽃다발을 들고 가 이야기를 나눈다.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서글픈 인연을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뼈의 내력」과 「원별리」는 이 책 제목과 가장 어울릴 만한 단편이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벌레잡이 화톳불」, 「옛날 남자」, 「원별리」에서 보이는 것처럼 자신들이 전쟁의 가해자라는 의식 없이 전쟁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무책임하고 군국주의적인 역사의식이 이 책에서도 드러난다.
아사다 지로는 『슬프고 무섭고 아련한』의 7가지 이야기 속에서 슬프고도 무섭고도 아련한 인연을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연결된 질긴 인연의 끈은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을 만큼의 서글픔과 안타까움과 사랑이 녹아 있다. 게다가 이런 느낌은 낯선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 기이하지만 낯설지 않아 보이는 이야기여서 책을 덮은 후에도 여운이 그대로 남는다. 그 여운은 그리움이다. 이제는 곁에 없는 사람에 대한 슬프고도 아련한 그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