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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오드리!
로빈 벤웨이 지음, 박슬라 옮김 / 아일랜드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너무 심심할 때, 생각할 거리 많고 복잡한 상징과 은유 가득한 멋진 소설들에 지쳤을 때, 치밀한 이야기 구조에 휘둘릴 때, 로빈 벤웨이의 『잠깐만, 오드리!』는 심심파적으로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다. 물론 더 유쾌하게 공감하면서 바람의 속도로 책장을 휙휙 넘기려면 나보다 어려야겠지. 최소한 한때 가수들에 열광하여 음반을 사 모으고 그들의 사진이나 화보, 브로마이드로 벽을 도배해 본 추억이 있다면 더욱 좋겠다.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녹음한 MIX테이프나 CD를 선물한 적이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 나이도 열여섯을 진작에 훌쩍, 아주 훌쩍 넘겼고 그런 추억조차 없어도 문득문득 낄낄거리며 읽는 동안만큼은 재미있었지만 말이다. (정말 재미있었다. 다 읽고 나서는, 조금 과장하여 아직 읽지 못한 한 트럭 분량의 다른 멋진 소설들이 마구 떠올랐지만.)
무엇보다 『잠깐만, 오드리!』는 발랄하다.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 “잠깐만, 오드리!”라고 자신을 멈춰 세우는 말에도 한 번쯤 돌아보는 동정심을 보이지 않은 대가로 삽시간에 유명 스캔들에 휩쓸려 달콤쌉싸름한 곤욕을 치르게 된 주인공 오드리부터 말이다.
먼저 걷어차지 못하고 걷어차인 남자친구가 자신에 대한 욕을 노랫말로 써 작곡한 곡 ‘잠깐만, 오드리!’가 빌보드 차트에 올라 승승장구하는 기염을 토하자, 그 노래의 주인공인 오드리도 하루아침에 안티와 팬을 골고루 가진 ‘스타’가 된다(우리나라였다면 안티가 압도적이었겠지만). 이제 공짜 립글로스가 오고 백스테이지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지만, 엄청난 수의 파파라치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따라붙고, 집 전화번호, 핸드폰 번호, 이메일, 메신저 아이디까지 공개되고, 데이트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에 나돌고, 급우들은 오드리의 정보를 팔아넘기기에 급급하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다시 사랑하게 된 새 남자친구도 생겼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하려고 굳이 고민할 것까지는 없다. 록음악과 밴드, 콘서트에 열광하고 음악그룹들이 찍힌 잡지 사진들을 오려 벽면 가득 모자이크하는 열여섯 금발 오드리도 꽤나 징징거리긴 하지만, 읽는 이에게 웃음 포인트를 적절하게 짚어주며 해피엔딩의 결말을 향해 슬기롭게(!) 나아가니까, 그저 책장을 휙휙 넘기면서 오드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면 된다.
그 안에는 유명해진 현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하는 오드리를 안타까워하는 웬수같이 귀여운 친구 빅토리아도 있고, 멍청이에서 훈남(?)으로 거듭나는 오드리의 새 남자친구 제임스도 있다. 그리고 각 장에 맞게 선정된 실제 곡들이 그 안의 이야기와 얼마나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다(이 곡들 때문에 읽었다. 제대로 재미있게(!?) 낚인 격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