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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ㅣ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고기계라는 닉네임을 가진 반 도젠 교수를 창조한 잭 푸트렐이 타이타닉 호의 침몰로 그의 미발표 원고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그의 책을 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꽤나 실망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밀레니엄>을 읽고 그런 기분을 다시 느꼈다. 작가는 죽었고 <밀레니엄> 3부작 이외에 작가의 다른 책은 더 없다. 게다가 작가 스티그 라르손은 이 책이 출간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보지 못한 채 사망하였으며 그의 부인은 법적인 혼인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인세도 받지 못했다니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라는 이 책의 원제가 묘하게 오버랩되어 안타까운 심정이 더하다.
스웨덴식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은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새로울 것은 없어 보인다. 여느 국가에도 있을 법한 기업비리와 그에 얽힌 추악한 범죄, 그것을 파헤치는 주인공과 도움을 주는 천재 해커이며 주인공을 사랑하게 된 히로인. 어찌 보면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이며 헐리우드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스토리이지만 좋은 책의 가장 큰 미덕인 읽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경제전문 잡지 [밀레니엄]의 편집주간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베네르스트룀의 비리를 고발한 폭로기사를 잡지에 실었다가 역으로 고소당해 유죄판결을 받게 된다. 자신은 물론 잡지마저 파산할 위기에 처한 미카엘에게 스웨덴의 오랜 가족기업의 회장인 헨리크 반예르에게 자신의 손녀인 하리에트 반예르의 실종, 혹인 살인사건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오게 된다. 가문의 연대기를 집필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워 사건을 조사하던 미카엘은 새로운 시각으로 진실을 하나씩 파헤쳐간다.
히로인 리스베트 살란데르, 그녀는 몸에 문신이 가득한 천재적인 해커이며 주위에서 딱지를 붙인 사회부적응자이기도 하다. 반예르 가문의 의뢰로 미카엘을 조사했다가 결국 그와 팀이 되어 사건을 함께 풀어나가게 된다.
이 기묘한 조합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는 가장 큰 재미다. 리스베트를 평범하게 대하는 미카엘과 사회는 물론 남성에게도 적대적이던 리스베트가 사람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풀어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책의 각 장마다 적혀 있는 여성관련 범죄의 통계는 복지국가라는 스웨덴의 이면을 고발하고 있으며 그것을 대표하는 존재는 리스베트다. 그에 반해 여성들과 좋은 관계를 가진 미카엘의 직업이 저널리스트라는 점은 이를 비판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잡지 [밀레니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대목은 이것을 말하고 있다.
일요일 저녁에는 이 책을 읽지 마라는 책 뒤의 광고가 허황된 과장은 아니었다. 800여 페이지 가량의 책을 정신 없이 읽었으니까. 2부와 3부 이후로 스티그 라르손의 책을 더 만나볼 수 없는 것이 무척 아쉽지만 그만큼 나머지 책들이 기다려진다. 또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 하나가 책에 꽂혀 있던 섬의 지도와 반예르 가계도가 그려진 빨간 종이다. 이런 류의 책을 보다 보면 지도와 가계도를 자꾸 기웃거리게 되는데 따로 만들어 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