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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옷을 입은 여인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박노출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 애독자라면 윌리엄 월키 콜린스라는 이름은 『월장석』 때문에 낯설지 않을 것이다. 추리소설사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한 『월장석』에서 사용되었던 여러 기법들이 『흰옷을 입은 여인』에서 충분히 시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이야기의 서술 방식이다. 작가의 개입 없이 등장인물들의 시선만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한 사람이 시점이 아닌 사건에 관계된 중요한 인물-심지어 적대적인 사람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부터 저택관리인 같은 제한적인 사실만을 알고 있는 사람까지 등장시켜 저마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작가 자신의 말처럼 사건의 진행과정과 숨겨져 있는 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의 소설에서는 이러한 입체적인 시점을 보여주는 것이 익숙한 방식이긴 하지만 이 작품이 빅토리아 시대인 1860년에 쓰여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시도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고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을 보면 이 작품이 왜 고전의 반열에 들게 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가난하지만 착한 월터 하트라이트는 그의 이탈리아 친구인 페스카 교수의 도움으로 리머리지 가의 두 아가씨의 그림 선생님으로 초대를 받는다. 런던을 떠나기 전날 밤 집으로 가는 길에 ‘흰옷을 입은 여인’을 만나 그녀를 도와주게 된다. 리머리지 가에서 아름다운 로라와 활달하고 지혜로운 마리안을 만나 생활하던 중 월터는 로라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로라에게는 이미 약혼한 사람이 있었다. 로라의 행복을 위해 월터는 영국을 떠나게 되고 로라는 결혼 상대인 퍼시벌 경에 대한 의문의 경고 편지를 받지만 결국 결혼을 한다. 하지만 선량해 보이던 남편의 모습은 역시나 거짓이었고 로라와 마리안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주위를 ‘흰 옷을 입은 여인’이 계속 맴돈다.
사건의 주체가 되는 인물은 로라와 남편인 퍼시벌 경, 로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월터와 그주위를 맴도는 여인이긴 하지만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로라의 언니인 마리안과 퍼시벌 경의 친구인 포스코 백작이다. 뚱뚱하면서도 매력적이지만 사악한 포스코 백작과 그에 대항하는 지혜롭고 용기 있는 마리안의 대결 구도는 서로를 관찰하는 서술 방식 덕분에 더욱 흥미롭다.
고전, 특히 추리소설의 고전이라면 요즈음 읽기에 너무 낡은 것이 아닌가 하는 편견은 이 작품으로 날려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면서 직선적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긴 했지만 두툼한 책의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T.S. 엘리어트나 에드워드 피츠제럴드 같은 거장들의 평가에 충분히 납득할 만큼 만족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