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의 모자 -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본 17세기 동서문명교류사
티모시 브룩 지음, 박인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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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머시 브룩은 『베르메르의 모자』에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메르의 매혹적인 그림에 17세기 문물 교류의 역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놓았다. 티머시 브룩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그것도 베르메르의 그림에 주목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티머시 브룩이 말했듯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동서양의 문물이 왕성하게 교류되었다는 역사적인 배경 지식은 제쳐두고,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특징만 살펴봐도 그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신화적, 종교적, 역사적 의미나 상징 없이 온전히 인간의 일상생활에 집중한 장르화(genre, ‘일반적인’ 혹은 ‘전형적인’이라는 뜻의 ‘générique’에서 기원한 미술 용어-츠베탕 토도로프 『일상 예찬』)들이 많이 그려졌다. 일상생활을 회화로 옮겨도 충분히 미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다. 당연히 그 당시에 일상적으로 쓰였던 가정용품을 비롯한 다양한 물건들이 그림 곳곳에 등장한다.

게다가 그 시대 최고의 화가였던 베르메르는 평온한 일상생활의 아름다움을 위해 그린다기보다 자신의 그림이 아름다움으로 빛날 수 있도록 일상생활의 평온한 정경과 오브제들을 배치하고 빛과 그림자를 고려하여 너무도 꼼꼼히(?) 그렸다. 그것도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값비싼 물품들을 자신들의 실내로 기꺼이 들여올 수 있는 상류층 사람들의 일상을 말이다. 티머시 브룩이 주목한 비버 펠트 모자, 진주 귀고리, 중국 도자기 접시, 은화, 세계 지도 등은 그들의 일상 속에서 조금도 간과되지 않고 똑같은 중요성을 지닌 듯 반복적으로 그려졌다. 마치 그림을 위한 소품들로 애용한 듯 그의 그림들에서 여러 번 찾아볼 수 있다.

사실 티머시 브룩의 17세기 네덜란드의 동서양 문물 교류사를 이야기하는 데 꼭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언급하지 않았어도 크게 상관없었을 것이다. 제목에 화가 ‘베르메르’의 이름이 들어갔다고 ‘베르메르’와 ‘베르메르의 그림 읽기’에 초점을 맞춘 예술서라는 오해를 하지 말길 바란다. 티머시 브룩의 『베르메르의 모자』는 17세기 네덜란드, 더욱 확장하여 네덜란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지역)와 “단절 없이 이어진 세계”의 역사서다. 베르메르의 그림 속 오브제들은 역사를 이야기하는 데 작지만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열쇠가 되어주는 동시에 흩어진 역사를 유기적으로 매끄럽게 조합하는 윤활유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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