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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
이민진 지음, 이옥용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와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이지만 민족, 국가, 인종의 경계가 약화되면서 ‘이산散’ 혹은 ‘이산인’이라는 넓은 의미로 확장됐다. 이산인들, 즉 디아스포라들은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살아가며 경계인 혹은 이방인으로 존재한다. 이때 안팎을 구분하는 기준은 일반적으로 “민족국가의 영토”[※『디아스포라 문학』(정은경)]이지만, 사실 내가 ‘안’의 사람일 수 있는 뿌리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누구나 감정적으로 디아스포라가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고향을 떠났다. 정서적인 고향(부모님)도, 물리적인 고향(공간)도 떠나 서울에서 교육을 받고 직장을 잡고 가정까지 이루어 이젠 이곳이 내 생활의 중심임에도 나에게 서울은 여전히 ‘객지客地’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내 근원의 뿌리인 고향에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하고 있다. 그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이방인으로 들뜨고 경계인으로 서성거리고 스스로 아웃사이더임을 자처한다(‘자처’는 일종의 자기 최면성의 위무다. 내가 자처하든 자처하지 않든 나는 어느새 아웃사이더로 밀쳐나 있다. 내가 아웃사이더로서 인사이더를 외면한다면, 그렇게 행동하는 데는 내 의지도 물론 포함되어 있겠지만 소외감을 덜 느끼려면 그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이 나를 거부하기 전에 먼저 거부함으로써 내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이라고나 할까). 이방인, 경계인, 아웃사이더가 나의 진정한 정체성이라는 듯이. 하지만 내 근원의 뿌리로 늘 그리워하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나는 맞춤옷을 입은 듯 들떠서 삐걱거리는 일 없이 편안히 안주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대단히 안타깝게도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다. 나는 ‘고향’에서도 ‘객지’에서 생활한 흔적을 말끔히 지우지 못하고, 고향은 더 이상 ‘예전 내 고향’이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나의 ‘소외감’은 언제 어디에 있든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온전한 고향 사람도, 객지 사람도 되지 못한 채 그럼에도 나는 내 미래를 꿈꾸길 포기하지 않는다.
이민진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작가 자신처럼 이민 1.5세대 여성 케이시 한을 중심으로 다양한 유형의 한인과 재미교포 사회의 모습을 눈앞에 펼쳐놓는다. 작가도 “내가 겪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이 책에 맘껏 담았다. 이제껏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놨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한국의 독자들에게)라고 고백했듯 그동안 가슴에 무겁게 꼭꼭 눌러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모조리 쏟아낸 것 같다. 그 이야기들은 언뜻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한국계 디아스포라들을 통해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작가의 성장 배경을 투영한 조셉 한과 리아 조가 대표하는 이민 1세대 부모와, 케이시 한과 티나 한이 대표하는 이민 1.5세대 혹은 2세대 자식이 이루는 이민자 가정을 통해 속속들이 들여다보인다.
조셉 한과 리아 조는 새로운 삶을 찾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왔지만 정작 자신들은 미국 내 작은 한국인 한인 사회 안에서 맴돌며 모든 것을 바쳐 자식들을 뒷바라지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자식들이 대신 이루어주리라 기대한다. 자식들의 성공은 곧 삶의 터전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긴 부모의 선택과 결단력이 옳았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니까. 그러나 케이시 한과 티나 한은 부모의 기대가 버겁고 부당하게만 느껴진다. 그녀들은 한국계(아시아계) 황인종이든 순수 백인종이든,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주류든 비주류든, 이 모든 것을 떠나 ‘개인’으로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길 희망한다. 하지만 현실에는 엄연히 황인종도 백인종도 존재하고, 한국인도 미국인도 존재하고, 주류도 비주류도 존재하며, 그 둘 사이의 간극은 도저히 넘어서기 힘들 만큼 크기만 하다. 엄연히 미국인이지만 한국계임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자식들이 미국인으로 미국의 주류 사회에 편입하여 성공하길 원하지만 자식들에게서 미국적 정서가 아니라 한국적 정서를 기대하는 부모도 매몰차게 외면하기만은 어렵다.
그들은 고독하고 외로우며 소외감에 진저리친다. 그러나 그것은 개개인이 하나의 ‘섬’으로 존재하는 모든 인간들의 숙명적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이민진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특징을 걷어내면 특정 집단이 아닌 보편적인 인간들의 열정, 집념, 야망, 꿈, 고독감, 좌절감, 소외감 등등을 생생하게 맞닥뜨릴 수 있다. 다만 그것들이 디아스포라들에게는 훨씬 극대화될 뿐. 세상의 모든 디아스포라들이 안팎, 이쪽저쪽, 이곳저곳과 같은 집단적 구별을 초월하여 ‘너’와 다른 ‘나’로 존재감의 뿌리를 내리고 ‘네 꿈’과 다른 ‘내 꿈’을 꿀 수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