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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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똥주 좀 죽여달라고 하느님을 조르느라, 아니 자기 말을 들어주면 뚱주한테 받는 헌금만큼 내겠노라며 구슬리느라, 급기야는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절에 가겠노라며 아예 협박하느라, 교회에 다니는 완득이가 강렬한 첫인상과 함께 툭 튀어나온다. 김려령의 『완득이』는 너무나 살벌하지만 그만큼 웃기고 맹랑한 소원을 사뭇 진지하게 비는 완득이의 모습을 들이밀며 경쾌하게 시작한다. 물론 시작뿐만이 아니다. 이 작가, ‘김려령’은 처음부터 끝까지 깔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으로 배꼽이 무사한지부터 살피게 만든다. 오히려 내가 이 장면에서 마냥 이렇게 웃어도 되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

내가 쉼 없이 깔깔거리는 사이 작가는 난쟁이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외모는 번듯하지만 약간 모자란 말더듬이 민구 삼촌까지, 세상의 잣대에 의하면 지지리 궁상, 불우한 환경을 완득이의 배경에 툭툭 떨구어놓는다. 그러나 옆집 옥상에 살면서 동네방네 고성방가로 ‘완득이네 통신원’을 자처하는 요상한 욕쟁이 담임 똥주와, 완득이를 부르는 똥주의 고함 소리에 화음을 넣듯 다시 한 번 완득이의 이름을 들먹이며 욕설을 퍼붓는 앞집 아저씨의 존재는 웃음을 뻥뻥 터지게 한다. 차마 웃지 못할, 웃어서는 안 될 장면에 어울리지 않게 경쾌한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을 지뢰밭처럼 깔아놓은 작가의 능청스러움은 자칫 울적하고 잿빛으로 가라앉기 쉬운 주제들을 밝고 긍정적으로 스케치하면서 웃음이 뻥뻥 터지는 박장대소 속에 감동이 묵직하게 들어설 자리까지 잡아놓는다.

김려령의 『완득이』는 지금껏 내가 만났던 한국 소설들 중 가장 유쾌하게 웃으며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고, 완득이는 지금껏 내가 만났던 한국 현대소설에 등장했던 인물들 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다. 70, 80년대 대학생들의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무거운 주제, 질척거리는 신파조 불륜, 감상적인 자전소설, 서사는 없고 공들여 조탁한 겉멋 가득한 문장들만 난무하는 소설, 서사도 없고 문장력도 없고 시의적절하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만 있는 소설 등등 한때의 유행처럼 끓어올랐다가 사라지는 우리나라 현대소설들 가운데 『완득이』의 등장은 너무도 반갑다. ‘난쟁이 아빠와 베트남인 엄마를 둔 고등학생의 성장기’라고 하면 그저 그렇고 그런, 또 다른 구태의연한 소설 한 편으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오해라는 것은 『완득이』를 읽어봐야 알 수 있다. 무거운 주제를 더더욱 무겁게 형상화하는 것은 얼마나 숨 막히는 일인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벼운 웃음으로 풀어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완득이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더욱 빛난다. 물론 욕설이 난무하는 조폭 같은 선생 똥주의 모습이 많이 과장되어 있고 그의 배경에 외국인 노동자를 착취하는 부자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실소를 머금게 하긴 했지만, 그것도 사랑스러운 완득이의 후광에 가려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 나이 먹은 내가 ‘너,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고 멋지잖아!’라고 말하면 완득이는 분명 코웃음 치며 들은 체도 하지 않겠지만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네게 전염되어 나도 웃고 있는데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제 당신도 완득이를 만나볼래? 금방이라도 소설 속에서 툭 튀어나와 개천에 얼음이 얼었다고 데굴데굴 구를 것만 같은.

 “개천에 얼음이 얼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웃음이 났다. 아니 무슨 물도 별로 없는 개천이 얼고 그래. 아이참, 저거 얼어도 썰매 못 타잖아. 아이고 배야, 개천이 자꾸 나를 웃겼다. 계집애가 겁도 없지 무슨 종군기자야. 하하하. 아우, 왜 오늘따라 종군기자라는 말이 다 웃겨. 오다가 꽃 냄새 나는 껌을 씹었나? 이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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