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사고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케이토가 묻는다. “매일 잠들 때마다 생각했어. 오늘과 내일의 경계가 언제일까? 아침까지 깨어 있으면 알 수 있을까? 그런데 테츠가 이러잖아. ‘그것도 몰라? 밤 12시부터 내일이지. ’ 나로선 꽤 충격이었어. 내일이란 게 시간으로 정해진다는 사실이.” 정말 테츠의 말처럼 자정을 기점으로 그렇게 간단히 오늘과 내일을 구분할 수 있을까? 오늘과 내일을 구분할 수 있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케이토를 따라 나도 곰곰 생각에 잠긴다. ‘자정 24시’를 기준으로 오늘과 내일을 무 자르듯 경계 짓는다면 모든 사람은 오늘과 내일에 걸쳐 깨어 있거나 잠자게 된다. 내가 깨어 있는 동안이나 잠자는 동안 오늘과 내일이 이성적으로, 산술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몸도 그토록 급작스럽게 기계적으로 오늘과 내일을 달리하여 생체리듬을 조절할까? 그렇다면 ‘잠 ’으로는? 너무 피곤하여 늦은 9시쯤 잠들면 그 이후의 잠자는 시간은 내일에 속할까? 왠지 눈이 말똥말똥 감기지 않아 자정을 넘겨 새벽 4시쯤 잠든다면 날짜가 바뀐 후의 네 시간까지 오늘이고 그 이후의 잠자는 시간부터 내일일까? 이것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내가 대답한다. “오늘만 있을 뿐이야!” 편의상 오늘과 내일을 구분할 수 있다 치고, 오늘 자고 내일 일어난다고 해도 “어, 드디어 내일이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다시 시작해야겠군.”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니까 오늘 자도 내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일어나는 셈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시각각 내일이 다가오는 순간순간이 모두 ‘오늘’이 되어버리니까. 어제를 추억하든 내일을 기대하든 나는 언제나 오늘을 산다. ‘오늘 하루’가 차곡차곡 쌓여 일상이 되고 역사가 되고 내일을 오늘로 끌어안는 용기와 희망이 된다. 그래서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내일을 오늘로 살아가는 것은 눈부신 일이다.

시바사키 토모카의 『오늘의 사건사고』는 3월 24일 오후 1시부터 3월 25일 새벽 4시까지 교토로 이사 간 마사미치네 집들이에 모인 친구들의 ‘사건’이랄 것도, ‘사고’랄 것도 없는 자잘한 이야기다. 그런데 소설 제목은 왜 “오늘의 사건사고(きょうのできごと)”일까?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유장한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인식 한계 내에서 관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정해 놓은 날짜와 시계의 시침, 분침에 따라 기계적으로 구분하면, 3월 24일 오늘과 3월 25일 내일 혹은 3월 24일 어제와 3월 25일 오늘의 이야기인데? 마사미치네 집에 모여 술을 해롱해롱 마셔대긴 했지만 케이토가 꽃미남 가와치와 친해지려고 노골적으로 들이대고, 마키가 남자 친구 나카자와의 동기인 니시야마의 머리를 엉망으로 잘라놓고, 니시야마가 문에 발라놓은 맹장지에 삼각형을 규칙적으로 여러 개 도려내고, 마실 거리를 더 사러 나간 마사미치가 자전거를 탄 채 넘어진 일이 있었을 뿐인데? 그러나 시바사키 토모카의 모순적인 제목은 이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매력으로 압축되어 있다.

마사미치네 집들이에 모인 친구들에게는 3월 24일과 3월 25일이 모두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이다. 어제의 머릿속 추억도, 내일의 머릿속 계획도 아닌 지금 이 순간 공간과 시간을 나누며 몸으로 함께 부대끼는 ‘오늘’인 것이다. 큰 일 대신 작은 일, 별일 대신 흔한 일, 특별한 일 대신 평범한 일로 소박한 하루를 아름답게 빛내는 일상들이 모두 ‘오늘’인 것이다. 그것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오늘’을 따분해하지만 않고 열심히 이어가는 이유다. 문득 아시나노 히토시의 만화 『카페 알파』가 떠올랐다. 어느 미래 육지가 점점 바다에 잠겨가는 세상의 종말을 코앞에 두고서도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무수한 오늘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바사키 토모카는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일상을 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나를 감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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