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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잡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죽음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시각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지리적인 위치 때문일 수도 있고 종교적 가치관 때문일 수도 있으며 관념적인 차이일 수도 있다. 죽음을 관장하는 신에 관련해서도 이런 차이점이 나타나는데, 서양의 경우 죽음의 신은 그림 리퍼(The Grim Reaper)라 하여 해골처럼 앙상하게 마른 데다가 헐렁한 옷으로 몸을 감싼 채 거대한 낫(추수를 의미하는 낫을 들고 있는 것은 생명을 거두어들인다는 의미와 관련이 있다)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그림 리퍼가 죽은 자를 데려가는 일을 하는데 직접적인 ‘죽음의 신’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대리 인격인 저승사자와는 차이를 보인다. 크리스토퍼 무어는 영혼의 물품을 수거해 윤회를 돕는 ‘죽음의 상인’을 등장시켜 동양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접목시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제 감이 오시는지? 검은 표지의 앙증맞은 그림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보행기에 타고 있는 빨간 리본을 맨 꼬맹이 그림 리퍼(이 책에서는 죽음의 제왕인 루미나투스)는 찰리의 딸인 소피이며, 보행기를 끄는 손의 주인공이야말로 자신이 루미나투스라고 착각한 우리의 보잘것없는 베타 남성인 찰리다. 이렇게 크리스토퍼 무어는 루미나투스와 죽음의 상인들, 개성 넘치는 주변 인물들(심지어 케르베로스의 개를 연상시키는 개 두 마리까지)을 등장시켜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육체적, 지적 능력 등 여러 면에서 뛰어난 알파 남성(수컷 우두머리)에 비해 훨씬 평범하거나 그보다 떨어지는, 하지만 성실하고 가정적인 베타 남성인 찰리의 부인 레이첼은 딸 소피를 낳고 죽는데(루미나투스를 낳았으니 그럴 수밖에), 찰리는 아내의 영혼이 깃든 물품을 수거하러 온 죽음의 상인을 보게 된다. 이후 자신에게 우편으로 도착한 ‘죽음의 백서’라는 책을 금발머리 종업원 릴리 때문에 제때 넘겨받지 못했음에도 자신의 주위에 항상 죽음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된 찰리는 우여곡절 끝에 죽음의 상인의 일원이 된다. 소중한 딸인 소피는 자라면서 말 한마디로 생명을 없앨 수 있는 무서운 능력을 갖게 되고 소피를 지키기 위한 거대한 지옥의 개 두 마리까지 등장한다. 죽음의 상인들이 영혼의 물품을 제때 수거하지 못하고 지하의 괴물들이 이를 차지해 힘을 키워 출몰하게 되자 자신을 죽음의 제왕인 루미나투스라고 착각한 죽음의 상인 찰리는 이에 맞서게 된다.
크리스토퍼 무어의 『더티 잡 』은 유머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책 전체에 죽음이 가득해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이런 시끌벅적한 유머 속에 죽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죽음의 상인이 하는 일이 바로 ‘더티 잡’일 것이다. 항상 죽음 곁에 있어야 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영혼의 물품을 수거해야 하니까. 만일 내 영혼이 깃든다면 어떤 물건이 좋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