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 글 못 쓰는 겁쟁이들을 위한 즐거운 창작 교실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는 제목처럼 ‘글쓰기’에 관한 책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 쓰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주 독특하고 재미있는 개성적인 소설을 쓰는 다카하시 겐이치로라면 누구나 다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면 어디 한 번 그의 소설 쓰기 수업을 들어볼 만하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나는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을 쓰는 데는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비법이 아니라 타고나는 문재文才와 또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상상력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글쓰기’책이 난무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소설을 좋아하는, 한때 소설을 써볼까 끄적인 적이 있는(물론 재능과 상상력 부족으로 일찌감치 내 깜냥을 파악했지만) 나를 “친구”라고 부르며 ‘그까짓 소설, 아무나 쓸 수 있어’라고 말한다. 다만 “바보”가 되어 이야기를 기다려줄 자세를 갖추었다면, 소설과 느긋하게 놀아줄 준비가 되었다면, 악착같이 뭔가를 쓰려고 서두르지 않는다면 말이다.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는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우연한 기회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창작 교실을 열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성인을 대상으로 실제 소설 쓰기 수업을 하듯이 재구성한 책이다. 어른 작가 지망생을 바로 눈앞에 두고 말하는 것처럼 대화한다.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하고 싶은 말은 물론 자신이 하고, 자기 말에 적극적으로 따르거나 어처구니없는 소리라는 듯 따지고 드는 독자의 깨달음과 의문까지 자신이 전부 다 한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듯 글선생과 학생이 주고받는 품새가 재미있다. 그렇게 너스레를 치며 그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세상에서 오로지 당신만 쓸 수 있는 당신만의 소설’을 쓰라는 것이다. 누구나 남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들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만의 소설 작법을 엿보면서(정말 엿보기만 했다. 글을 잘 써보려고, 소설을 쓰겠다는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보려고 이 책을 읽은 것이 아니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던 “소설과 놀아준다”를 ‘소설 읽기’에 적용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에게 낯설고 생경해서, 마냥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쉽게 ‘별로!’라고 단정했던 소설들과 좀더 느긋하게 놀아줘야겠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이런 소설을 쓰라면서 “가장 즐거운 놀이는 아무도 생각해 낸 적이 없는 지평으로 나가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가장 즐거운 놀이는 책을 읽으면서 아무도 생각해 낸 적이 없는 의미의 지평으로 나가는 일이다”로 받아들인다. 진짜 소설가의 소설 쓰는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소설을 제대로 읽는 법까지 알려준 다카하시 겐이치로가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