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 오늘도 사회성 버튼을 누르는 당신에게
남인숙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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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대체로 지극히 내성적이었다. 부모님은 내 사회성을 늘 걱정했고, 동생들은 누나의 저 까다로운 성질에 넌더리를 냈다. 가족들은 내가 친구 없이 따돌림을 당할까, 저렇게 나이만 먹어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제대로 어른 노릇이나 할 수 있을까 항상 노심초사했다.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느라 밝고 착한 척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빼놓고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좋은 사람’ 코스프레는 대학 1학년 반 학기 만에 때려치웠다. 그 반 학기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이 모임 저 모임에 휩쓸리며 왁자지껄 몸에 맞지도 않는 알코올로 정신없이 보내고 나니, 문득 지겨워졌다. 그리고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억지로 뒤집어쓰고 있는 듯한 ‘좋은 사람’이라는 옷이 싫어졌다. 누구에게 ‘좋은 사람’? 도대체 누가 보기에 ‘좋은 사람’? 나는 그리 좋은 사람도 아닐뿐더러 모든 이에게 한결같이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남인숙의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를 읽었다. 돌이켜보면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한 그 시절, 그래서 나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생애에 인간관계가 그나마 넓은 편이었던 그 유일한 시절, 나도 잘 몰랐지만 ‘사회성 버튼’이라는 걸 과하게 누르고 있었던 것 같다.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이어야 할 상황에서 누르는 의식 속의 버튼”을 남인숙은 ‘사회성 버튼’이라고 한다. 그 버튼을 누르면 그럴듯한 사회인 역할도 제법 버젓하게 해낼 수 있다. 하지만 사회성 버튼도 너무 자주, 너무 오래 눌러대면 망가진다. 내 사회성 버튼은 삼 년 반 만에 완전히 고장 났다.

나 자신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이후, 나는 꼭 해야 할 일이나 할 수밖에 없는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자질구레한 선택의 순간에 하고 싶은 일은 하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기준을 적용했다. 그동안 싫은 소리를 하기가 꺼려져 좀처럼 거절하지 못했던 부탁도 단호하게 거절하고, 피곤한 자리도 전부 거부했다. 타인에 대한 내 관심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향했다. 내 마음을 1순위로 두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 내 감정도 생활도 타인에 대한 기대도 담백해졌다. 그 때문에 인간관계는 다시 협소해졌다. 내 곁에 남을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내 삶의 주기와 영역에 따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대신 남은 사람은 삶의 주기나 영역과 상관없이 아직도 가까이에 남아 있다. 고맙게도 나에게 좋은 사람은 남아주었다.

남인숙은 내성적인 사람에게 “세상이 주는 자극 중에서 가장 강렬한 자극이 바로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렇다. 가장 큰 기쁨과 위로와 응원도, 가장 깊은 슬픔과 서운함과 안타까움도, 가장 곤란한 피로와 불편과 거북스러움도 ‘사람’이 준다. 어쩌다 보니 내성적인 성격으로 낯선 사람들이 수시로 중요하게 끼어드는 일을 여태껏 하면서 항상 ‘사람’을 대하기가 제일 피곤하기만 한데도, 그래서 “제아무리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일지라도 타인과의 상호작용은 간식이 아니라 주식 같은 것이다. 거기에 데어서 아플 때는 한동안 쳐다보기도 싫지만, 그런 화상마저 결국 관계에 의해서만 아물 수 있는 서글픈 모순을 가진 채 우리는 살아간다”는 문장에 수긍할 수밖에 없어진다.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는 진짜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저 내성적인 척해서는, 내성적임을 어림해서는 이런 마음이 담길 수가 없다. 사실 남인숙은 외향적인 사람에 가까우리라고 오해했다. 자기계발 베스트셀러 저자에 대한 내 지독한 편견 탓이다. 그녀의 어느 인터뷰 영상을 찾아봤다. “책은 두 가지 역할만 해야 된다. 재미있거나 도움이 되거나”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은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모든 솔루션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싶었고”, 기존 책들은 그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신중하고, 자기 글에 대한 소신도 분명한 작가였다. “한창 성공 비슷한 것을 할 무렵”, 그녀에게 “인생 사건이 폭풍처럼 닥쳐서는 생존 욕구 외의 모든 자아를 탱크처럼 깔아뭉개고 지나간 탓”에 그녀의 사회성 버튼이 보통의 사회성 버튼보다 훨씬 강력하게 눌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 사회성 버튼은 최소한으로 눌러져 있다. 밥벌이는 그럭저럭 해나갈 수 있도록, 상대에게 인간적으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를 위해서. 딱 이 정도가 나에게 편안하다. 그래서 좋다. 『사실, 내성적인 사람입니다』는 내성적인 사람들의 자기만족적 공감을 위한 책에 그치지 않는다. 남인숙은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자신이 타고난 성향에 극단적으로 주저앉는 건 어른이 할 일이 못 된다”라고 말한다. 자기 성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사회성 버튼은 어떤 기능을 가진 무슨 색깔의 버튼이어야 스스로도 행복할지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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