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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평점 :
- 약물에 의해 통제되던 순수악인 유진이 스스로 약물을 중단하고 벌어진 사건을 통해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는 이야기.
- 유진의 감정이 잘 살려있어서 나도 모르게 그가 불쌍하고 응원하게 됐다. 형을 벼랑끝에서 밀지않았다는 유진의 말을 끝까지 믿고싶었던건 나도 유진의 설득에 넘어간거겠지?
- 사이코패스중에서도 최고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는 아닌것 같았다. 약물에 의해 그 본성이 갇혀있었다해도 유진모나 해진이 너무 맹탕아닌가? 아니 하다못해 이모가 너무 쉽게 그물에 걸려버려서 맥이 빠지고 아쉬웠다.
15 : 피 냄새가 잠을 깨웠다. 코가 아니라 온몸이 빨아들이는 듯한 냄새였다. 공명관을 통과하는 소리처럼 내 안에서 되울리고 증폭되는 냄새였다.
16 : `약 끊기`는 사막 같은 내 삶에 스스로 내리는 단비였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단비의 비용으로 발작이라는 후폭풍을 치러야 한다. 지금 자각하는 현상들은 폭풍의 임박을 알리는 전령사였다. (...) 폭풍을 피할 항구 같은 건 없다. 도착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폭풍의 시간은 암흑의 시간이고, 나는 무방비 상태로 거기에 던져진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과정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의식이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길고도 깊은 잠을 잔다. 일련의 과정은 육체노동과 비슷하다. 단순하고 격렬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힘의 소모가 크게 피곤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결과를 예상하고 저지른 짓이라는 점에선 자업자득일 것이다. 결과를 감수한 반복 행위라는 점에서 중독이다. (...) 약물 부작용인 두통과 이명이 사라지고 오감이 내 젖꼭지도 딸 수 잇을 만큼 예리해진다. 후각이 개같이 예민해진다. 머리는 그 어느때보다 기민하게 돌아가고, 생각 대신 직관으로 세상을 읽어들인다. 내가 내 인생을 지배하고 있다고 느낀다. 인간이 만만해진다. (...) 어머니와 이모가 여전히 `만만` 권역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내 인생은 두 여자가 깔고 앉은 방석이나 다를 바 없었다.
206 :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내 머리가 내놓을 수 있는 마지막 패이기도 하다. 어젯밤 나는 멀쩡한 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해결책으로 망각을 택했으며, 내 자신에게 속아 바보짓을 하며 하루를 보낸 셈이었다.
263 :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292 :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른 2시간 30분이 감쪽같이 기억에서 지워졌던 이유가 뭔지. 기억해내는 순간, 나고 자란 세상을 떠나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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