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5월
평점 :
품절


. 마루야마 겐지는 1945년 나가노 현 이에야마 시에서 태어나 스물 두 살 되던 해인 1966년에 그의 첫 작품인 '여름의 흐름'이란 소설로 '문학계' 신인문학상과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연이어 수상했습니다. 그의 아카타가와상 수상은 역대 최연소 수상이기도 했는데요. 우리나라에는 그의 '천 년 동안에',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등이 번역돼 나와있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는 소설로만 대답해야 한다'라고 말하는데요, 그러나 오늘은 그의 작품보다는 소설가로서의 마루야마 겐지를 좀더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소설가는 원고료만으로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언론과 문단과의 관계를 일체 끊고 고향인 오오마치(大町)에 거주하면서 창작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는 소설가들이 함께 떼지어 몰려다니며 창작에 몰두하기보다는 오히려 소설가인 양 하는 데 더 관심을 갖는 태도를 비난합니다. 그래서 겐지는 소설가는 '고독 그 자체를 직시하고, 그것과 맞붙어 거기에서 튀어나오는 불꽃으로 써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죠. 또 문학상들이 소설을 팔아먹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비판하며 일체의 문학상을 거부해오고 있습니다. 문학상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문예지에 소설을 제외한 에세이나 대담, 서평 등에도 일체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문단에서는 이런 마루야마 겐지를 일본 문학의 영향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일본 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출한 작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리는 '소설가의 각오'라는 산문집은 소설가로서만 살기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겐지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요. 이 책에 나오는 한구철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나는 절대로 농사 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채소 한 포기도 기르지 않았다. 감히 농사를 모독할 수가 없었다. 소설을 쓰면서 지을 수 있는 농사는 단 한가지도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만약 양자를 병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 삶을 사는 것이다. 어느 한쪽은 장난 삼아 하는 소일거리일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는 채소에 있는비타민이 필요했음에도 결코 농사를 짖지 않았습니다. 대신 집에 있는 비타민제를 복용해 몸의 필요를 채웠다고 합니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겐지의 이런 태도가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그의 고지식함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저는 겐지의 글을 읽으면서 사무사(思無邪)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마음 속에 일체의 사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다.'라는 뜻이죠. 사사(邪思)로움에 빠지면 순수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겐지가 소설가로서의 각오를 다지는 이 글은 그가 견지하는 思無邪의 태도가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그의 글 한 대목을 더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소설은 햇빛이 있는 동안 써야 마땅하다. 낮의 햇살은 문장을 환히 비추어 진위 여부를 명백하게 분별해준다. 진짜 문장은 글에 묵직하고 선명한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가짜 문장은 그림자도 없이 글자를 공중에 띄워버리고 만다…'
   그림자 밑으로 숨으려는 사람들... 어둠 속에서만 입을 벌리는 사람들을 향한 겐지의 이런 외침은 시간이 갈수록 더 힘을 받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