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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
천규석 / 실천문학사 / 1999년 6월
평점 :
이 책의 저자는 농민 천규석 씨인데요, 1938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65년 농촌으로 돌아가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동안 만 평 전후의 소규모 농장을 네 번째 만들었는데요, 최근에는 경남 창녕에서 자신의 평생 이념인 소농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공생농두레농장'을 가꾸고 있습니다. 그간 천규석씨의 마음 고생은 몹시 심한 것이었습니다. 투기바람이 불었고 농촌은 이른바 구조조정으로 황폐화돼갔습니다. 저자의 꿈은 수도 없이 좌절당해야 했습니다. 저자는 이 심정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농민운동을 함께한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먼저 땅 속으로 갔고, 나보다 젊은 이들은 개발 성장 광풍에 휩쓸려 다 떠나갔다. 이것까지는 견딜 만했는데 설상가상으로 함께 농장을 만들고 농사짓던 아내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 아내가 간 뒤 10년 동안 나는 이를 악물고 이 농장을 지키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질 않았다. 모두가 농사 아닌 다른 일로 돈을 벌러 가거나, 민주화 운동이니 노동운동이니 한다고 도시로 더난 텅 빈 들, 텅 빈 집의 외로움과 적막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람직한 농업형태는 소농공동체입니다. 소농은 상업농에 대항하는 것이고 가족농의 형식을 띠는 것인데요, 이 공생농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립농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이밖에도 농촌과 관련한 저자의 다양한 관심은 꼼곰하며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최근 바람이 불고 있는 귀농문제에서부터 자동차 문제, 대안교육운동, 북한의 식량위기 문제, 농촌의 진정한 신명은 무엇인가, 그리고 장묘문제에 이르기까지 옹골찬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데요, 그러나 저자의 주장은 대개 시류와 정면으로 역행하는 것들이어서 독자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안타까움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자극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의 마지막 대목이 가장 감동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장묘문제에 대해서 화장보다는 매장을 주장하는데요, 화장을 반대하는 이유로 화장하는데 너무 많은 연료가 쓰이고 공해가 발생하며 주검을 자연으로부터 원천 격리한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장을 하더라도 돌로 묘비나 석실을 만드는 것은 역시 반대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매장은 주검을 흙으로 돌려서 땅과 식물의 거름이 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유언합니다.
'… 아이들아, 이 밭 한구석의 저 한그루 설중매 아래 봉분 없는 평장으로 나를 묻어다오, 한송이 매화꽃이든, 한그루의 이름 모를 풀꽃이라도 좋으니 내 땅에서 나를 거듭 살게 해다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류에 따라 삽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농사꾼 천규석 씨는 원칙에 몸을 묶고 일생을 시류와 역행해 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어떤 시인의 표현처럼 '사람들 사이의 섬'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시류에 지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이 섬에 내려앉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라는 게제 저의 독후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