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멋진 신세계 - 새로운 세기의 풍경들
김병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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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가 지은 '무서운,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의 문명비평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새로운 세기의 풍경들'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데요,  문명의 변환기에 선 한 인문주의자의 꼼꼼한 성찰이 실려있습니다.
    이 책의 첫 글은 저자가 핸드폰과 노트북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저자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가 주는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왜 고민까지 해가며 그 편리한 기구들의 구입을 망설이는가에 대해 의문합니다. 저자는 그 원인을 '현대의 전자문명이 주는 신속함과 정확함에 대한 저항'이라고 설명합니다. 또 이러 저항의 근원에는 '속도를 버리고 평온을 누릴 수 없을 까... 사회가 불편한 것을 편하게 견딜 수 없을까...'에 대한  안타까움이 자리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노트북과 핸드폰 말고도 우리 주위에 새로운 밀레니엄을 상징하는 단어들은 많습니다. 문화가 상품이 된다거나... 생명을 복제하는 기술이 일상화될 전망이라든가... 인터넷이 세상을 하나의 단위로 엮어 종래의 개념을 일시에 뒤바꾼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 실례들입니다. 저자는 새로운 밀레니엄의 우윳빛 환상을 유포하는 담론과 코드들을 예리한 눈으로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배후를 집요하게 들쳐내는데요. 저자는 자본과 과학을 그 배후로 지목합니다. 즉, 새로운 밀레니엄의 지향이란 것은 결국 자본과 과학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밀레니엄은 자본가들의 밀레니엄, 상품의 주소비자이며 이른바 N세대라고 불리는 통신세대들만의 밀레니엄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얘기하는 밀레니엄도 결국은 전인류적 차원의 가치는 애초부터 결여된 채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류 정신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던 문학도 결국 자본의 논리에 밀려 대중문화의 한 부속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극단적인 실례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제 독후감이 저자의 애기보다 더 우울하게 진행되는 것 같은데요, 이제 저자의 얘기 한대목을 조금 길게 인용하면서 제 얘기를 마치겠습니다.
   '… 새로운 세기는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의 시대이다. 그러나 그 꿈과 꿈의 실현에 대한 믿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새로운 세기가 두렵다, 아니 끔찍하다. 풍요하기 때문에 공허해질 것 같고, 편리하기 때문에 가벼워질 것 같으며 활기차기 때문에 동물적으로 될 것 같다. 건강해서 우리는 외로움을 즐길 수 없을 것이며 재미있기 때문에 희망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고 여가가 풍부해서 정처가 없을 것이며 정보와 지식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것들에 짓눌려서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맹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때문들로 두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 내가 두렵고 끔찍해지는 것은 이 안락하고 풍성하고 편리해진 세상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어떤 위상 속에 놓여질 것인가, 지금 우리가 가치 있다고 믿어온 신념들은 어떤 자리에 던져질 것인가에 대한 어두운 예상 때문이다. 그 예상은 한번 젖어들기 시작하면 한없이 캄캄한 미로에 빠지는 듯한 절망을 안겨준다… '
    인간 존재의 문제, 인간이 지난 두 천 년 동안 소중하게 받들어온 신념과 가치의 허망한 붕괴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 자본이라면…, 자본이 헤게모니를 쥐고 인간 위에 군림하는 새로운 천년이라면 그 천년은 멋진 천 년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서운 천년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의 눈과 귀를 간지럽히는 새로운 밀레니엄에 대한 각종 담론들을 지켜보는 김병익 씨의 우려와 걱정은 결코 노파심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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