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 씨는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라는 작품으로 시작해 그동안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인간에 대한 예의' 등 비교적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인 1963년 생 작가인데요,  그녀의 작품은 그동안 운동권을 소재로 한 것에서부터 여성문제, 운동권의 후일담 류, 그리고 최근에는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등으로 관심사가 완만하게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런 변화 내지 변신은 일각에서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만만치 않은 독자들을 거느린 우리 시대의 주요 작가입니다. 이제 오늘의 책 '봉순이 언니'를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던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독재를 지탱해 온 사람들이 있죠. 궁핍한 농촌을 떠나서 밥상에서 한 입이라도 줄이려고, 또 가정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려고 도시로 도시로 몰리던 젊은이들입니다.  이른바 공순이, 공돌이라고 불리던 공장 근로자와 이제는 가정부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식모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던 사람들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봉순이 언니는 작품의 화자인 다섯 살 박이 어린이 짱아의 집에 흘러들어온 '식모'입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창경원 벚꽃 놀이에서 숙모의 손에서 버려져 기구한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숙모에게서 버려진 후 봉순이 언니는 이집 저집을 전전하며 주인집의 학대를 받고 도망다니다가 이 작품의 무대가 되는 짱아의 집에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죠. 그러나 이 집에서도 주인집 아주머니의 다이아 반지를 훔쳤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도망가게 됩니다. 결국 누명은 벗겨지지만 그녀는 당시 함께 도망갔던 남자로부터 학대를 받아 쫓겨났고 또 그후 새로 재혼한 남자와도 사별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후에도 새로운 남자를 만나서 도망갔다가 혼자가 돼 다시 돌아오고 하는 일을 반복하며 늙어갑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맙니다. 이 책의 이야기도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런데 작가는 봉순이 언니의 삶 속에서 우리시대의 희망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이 책 191쪽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 나는 안다. 봉순이 언니가 한 번 남자와 도망갈 때마다, 그녀가 얼마나 목숨을 걸고 낙관적이어야 했을 지를. 그녀는 친구에게 도망간 남자를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달라. 뭔가 운명을 느꼈다니까. 가엾어서, 그래서내가 도와주고 싶었어. 밥도 따끈하게 퍼주고 셔츠 깃도 깨끗하게 빨아주고 저녁에 돌아오면 따끈한 물에 발도 닦아주고 싶어...'
   봉순이 언니가 살아있다면 지금은 50대의 중년 여성이 돼있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봉순이 언니를 까맣게 잊어버렸을 지 모르지만 우리의 봉순이 언니들은 시장바닥에, 달동네 빈민촌에서 그제나 지금이나 여전히 고단한 벼랑 끝의 삶을 연명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이 아무리 고단하더라도 희망을 찾기 위해서 억척같은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희망은 어쩌면 우리 시대의 가장 구체적인 희망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역사를 쉽게 수치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수치로 기록된 역사의 성긴 틈새를 풍부한 상상력으로 메꾸죠. 작가 공지영 씨가 되살려 놓은 '봉순이 언니'는 수치로 그린 역사의 엉성함을 가려주는 따뜻하고 아픈 소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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