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한알 속의 우주
장일순 지음 / 녹색평론사 / 199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이야기 모음집,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 책은  글모음집이 아니라 그야말로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장일순 선생은 지난 94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는데요, 생전에 이렇다할 글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이 생전에 선생이 행한 강연을 글로 풀어쓴 것과 또 이러저러한 잡지에 게재된 인터뷰 기사를 실은 것을 모은 것입니다.
  장일순 선생은 원주에서 태어나 배재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나와서 정치운동과 교육운동, 사회운동을 활발히 펼쳤습니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는 지학순 주교 등과 함께 원주를 근거지로 반독재 운동을 벌였구요.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이런 식의 운동방식만으로는 안되겠다는 한계를 느끼고 이른바 생명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생명운동을 실천하는 조직으로 도농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을 발족합니다. 이 책은 바로 선생의 생명철학, 생명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선생이 생전에 이렇다할 글을 남기지 않은 이유를 발문을 쓴 이현주 목사는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우리가 초등학교 때 세계 4대 성인이라고 배운 예수,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모두가 생전에 글을 남기지 않았던 사실과 장일순 선생이 글을 쓰지 않는 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성인들은 신통하게 생전에 꽤 말이 많으셨다... 한번 말씀을 내어놓으면 흐르는 강물처럼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쏟아넣고는 맨뒤에 혼자 남아 참담한 허탈을 남몰래 삼키셨을 것이다...'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말은 사람을 직접 보면서 하는 것이죠. 그러나 글은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람과 만납니다. 글이 다분히 이성적인 성격을 갖는다면 말은 감성적입니다. 어떻게보면 장일순 선생이 선호한 것은 이렇게 상대의 눈과 얼굴을 직접 보면서 하는 것이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겁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는 것... 이것이 말의 진정한 힘이죠. 그런데 이 책은 장일순 선생의 말을 글로 풀어쓴 것이어서 선생의 말이 지녔을 원초적인 감성은 많이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여전히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 시대에 드문 '제대로 된 말다운 말'을 들을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글과 강연, 대담으로 구성돼있는데요.
 제목 몇 개를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거룩한 밥상',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있다', '섬기는 것이 대하여', '반체제에서 생명운동으로', '한살림 운동과 공생의 논리' 등인데요. 이런 제목으로도 대중 책의 내용을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 복음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요. 이런 겁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얼마 전에 듣고 기뻤다라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겠지요. 그것이 오늘날의 바이블입니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그 역할을 다합니다. 복음이란 만남 속에 있는 것으로 그밖에는 없습니다...'
  또 생명사상을 잘 요약한 이런 글도 있죠. '...쥐를 위해서 밥을 언제나 남겨놓는다. 모기가 불쌍해서 등에다가 불을 붙이지 않노라. 절로 푸른 풀이 돋아나니 계단을 함부로 딛지 않노라...' 쥐나 모기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미물이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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