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할 때일수록 - 암 재발을 선고받은 부부의 일기
사와 마사히꼬 지음, 김영 옮김 / 현존사 / 1991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사와 마사히꼬라는 일본인 목사와 그의 한국인 부인인 김 영 목사의 47일 동안의 일기를 모은 것인데요. 이 47일은 남편인 사와 목사의 암이 재발되었다는 의사의 절망적인 선고로 시작돼 결국 이 세상의 삶을 마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사와 목사는 한국을 깊이 사랑했던 일본인 목사였습니다. 사와 목사는 한국 유학 기간에 김 영 목사를 만나 깊이 사랑에 빠지고 청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와 목사의 청혼을 받은 김 영 목사는 고민 끝에 치마 저고리 차림으로 양손에 두개의 트렁크를 들고 오로지 사와 목사 만을 의지하여 단신으로 나리타 공항에 발을 내딛게 되죠. 그러나 이렇게 맺어진 인연은 결혼 19년 만에 남편 사와 목사의 암재발 선고로 이별의 시간을 맞게 됩니다.
  의사로부터 암재발 선고를 받은 순간 사와 목사 부부는 큰 충격에 빠집니다.
특히 사와 목사의 아내와 딸은 분한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죠. 그러나 사와 목사는 이틀 만에, 아내인 김 영 목사는 사흘 만에 충격에서 벗어나 제정신을 차리고 침착하게 이별을 준비하게 됩니다. 사와 목사는 아내에게 서로의 일기를 교환하자고 제안하고 또 아버지에게 자신의 암재발 사실을 알립니다. 그리고 필생의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한국교회사의 집필에 들어갑니다. 아내 김 영 목사도 '죽음'과 관계된 책을 읽으며 남편의 죽음을 준비합니다.
 암선고를 받은 직후 사와 목사의 일기를 조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2월 10일 금요일.
죽음에 직면하여 적는 메모... 내 몸을 헌납하여 연구에 써도 좋고 또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면 부분적으로 이식해도 좋다. 이는 아내 영에게 맡긴다.... 고별식에 들어온 부의금은 장례 일체의 비용으로 하지만 남는 것이 있다면 내가 신세진 곳에 감사헌금을 하면 기쁘겠다... 남은 일, 하고 싶었던 일-한국의 기독교사 완성, 일년만 더 있었으면 한다... 고이와 교회시절의 설교 가운데 좋은 것을 발췌해서 출판한다....
   2월 13일.
나의 인생은 후회가 없다. 후회가 없으니까 죽음의 공포가 없다... 이런 말을 아내 영에게 했더니 '그렇지만 처자를 생각해도 불안감이 없어요?'라는 갑작스러운 질문을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문득 생각하니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나는 안심하고 하나님께 맡길 수가 있다... 암 재발 선고를 받은 후 그래도 1년에서 길게는 3년까지는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와 목사는 결국 자신의 50회째 생일도 맞지 못한 채 47일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사와 목사의 임종을 맞이하던 때를 김 영 목사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 남편 마사히꼬는 1989년 3월 27일 오전 10시 55분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너무나도 가혹하다고 생각되는 그의 최후가 문자 그래도 너무 아름답고 평온하며 감사와 찬송에 넘쳤던 것에 놀라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도 그 은혜를 풍족하게 나누어 받을 수가 있어 그의 마지막 의식이 남아있던 이틀 동안에 제게 이제부터 살아갈 수 있도록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충전하여 주었습니다. 이 이틀이 없었다면 나는 남편의 주검 곁에서 감히 이런 글을 쓰지도 못하고 쓰러져 울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이렇게 사와 목사의 죽음으로 끝이 납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얘기는 비단 사와 목사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가슴을 저미게 합니다. 저 역시도 지난 주간 동안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가슴 속에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고통스럽고 숙연하게 만드는 죽음....  과연 남은 사람에게 죽음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우리는 타인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됩니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약한 모습이죠. 사람들은 이런 가장 약한 모습 속에서 가장 진지한 태도로 삶을 만나게 됩니다. 절대 앞에서 상대적인 것은 왜소해질 수 밖에 없죠. 마찬가지로 죽음이라는 인간 존재의 가장 약하고 그러나 가장 절대적인 모습 앞에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추구하는 온갖 가치는 어쩔 수 없이 그 상대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마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하나님에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은총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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