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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 중에는 나이가 들면서 식물처럼 몸 안의 기름기가 빠져나가는 이가 있다. 이런 이는 풀, 나무들과 함께 어울리면 영락없이 자연(自然) 그 자체가 된다. 경상북도 봉화에 사는 농사꾼 전우익 씨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삶도 그렇지만 생긴 모습까지도 식물을 닮았다. 칠십을 넘은 그가 이제까지 모은 것은 정성을 다해 기른 나무들 뿐이다. 외지 사람에게 자랑하는 것도 단연 그가 키운 나무들이다. 시인 신경림 씨는 이런 전우익 씨를 일러 '산 속에 사는 귀한 약초(藥草)' 같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도 처음부터 농사꾼은 아니었다. 대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나 일제시대에 중학을 마친 그는 해방 후 청년운동을 하다가 사회안전법에 연루돼 6년의 징역을 살게된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봉화에 '갇히고' 만다. 그는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독서와 농사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였다. 때때로 숨이 막힐 둣하면 서울로 올라가 책을 한보따리 싸서 봉화로 되돌아오는 것이 어쩌다 한번 있는 일상의 탈출이었다. 이렇게 독서와 농사는 인생의 새로운 나이테가 되어 그의 삶을 살찌웠고 이제는 글이 되어 세상사람들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나무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한다. 전우익 씨가 기쁜 마음으로 찾는 사람들 중에는 성공회대학 신영복 교수, 판화가 이철수 씨, 정호경 신부, 시인 신경림 씨, 현기 스님, 종로서적의 이철지 사장, 이현주 목사, 동화작가 권정생 같은 분들이 있다. 초록(草綠)은 동색(同色)이라던가?
이 책의 가장 좋은 독법(讀法)은 저자에 대한 아무런 편견이나 사전 이해 없이 곧바로 글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면 세태에 아부함 없어서 곱씹을수록 맛이 더 우러나는 전우익의 글들이 책갈피 속에서 풀로, 나무로 또 농사꾼의 거친 손으로 독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먼저 펴낸 책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에는 사진작가 주명덕 씨가 촬영한 전우익 씨의 사진이 여러 장 실려있다. 이 사진들은 오히려 실제를 과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하지만 독자들은 이 사진 속에 나타난 저자의 신발이나 옷가지까지 놓치지 말고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봉화의 고집쟁이 농사꾼 전우익 씨의 참모습이 숨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