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 - 절대 외면할 수 없는 권리를 찾기 위한 안내서
김지윤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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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는 원칙의 공정성과 절차의 공정성이 준수되는 사회이다. 사회 구성원이 합의하여 만든 게임의 규칙이 존재해야하고 그 룰을 통해서 어느 누구에게도 공정한 혜택의 기회가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원칙의 공정성을 뒷받침해줄 투명한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사회는 공정한 사회일까? 불행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듯 하다. 개인의 노력 보다 사회경제적 배경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헬조선', 'N포세대', '수저계급론' 등 늘어나는 신조어는 이러한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헬조선'과 함께 거론되는 '노오력'이라는 신조어도 있다. '노력''노오력'은 다르다. '노력'이 달성가능한 목표를 위해 개인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노오력'은 개인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표 그 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목표를 달성할수 없는 사회구조 안에서 이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것을 개인의 능력과 태도, 열정의 부족으로 돌리는것... 이것이 '노오력'의 실체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회는 공정함 보다는 인종과 국가, 성별, 문화 등에서 기인한 수많은 차별로 얼룩져 있다. 각자가 처한개별적 삶의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진 사건들과 그것이 누적되어 이루어지는 역사와 사회구조에 좌우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수자들이 진리라고 강요하는 것, 불편한 진실에 맞서소수자로서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세상을 향해 작지만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는 과정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 권리는 희생하고 싶지 않습니다>에서 저자 김지윤은 사회로부터 보호 받지 못하는 약자와 소수자, 비주류들에 관한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른바 방 안의 코끼리 (Elephant in the room)’ 문제다. ‘방 안의 코끼리'는 누구나 문제라는 걸인식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언급하지 못하는 무겁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 ‘코끼리사회라는 안에 자리잡고 있는 그동안 해결되지 못한 채 누적되어 온 남겨진 숙제를 의미한다. 강제 물리력 행사와 수많은 유인책 등에도 방안에 들어앉아 꿈쩍하지 않는 코끼리를 보며 사회의 주류들은 이를 애써 외면한채 코끼리의 행동반경에서 벗어나 살아가지만 비주류들은 사회의 최일선에서 코끼리로 인해 초래되는 위험과 불편들을 온몸으로 떠안으며 살아간다. 책에서 사회 비주류로 언급되는 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경제적 빈곤층 등이다.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소외받는 이들은 다양한 시각과 기준으로 분류되었지만 소수자적 위치, 마이너리티라는 공통점을 내포하고 있다. 저자는이를 인지하면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다음과 같다.

 

이 사회는 성공에 핀 조명을 맞추고 이를 몇 백배 빛나는 스토리로 만든다. 왜 그러냐고? 알파걸의 성공은 화려한 승전으로 남지만, 취약 계층 여성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은 여봐라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눈부신 기록으로 기억되지 않기 때문이다.” (P. 51)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통계 숫자 보다 더 중요한건 차별과 성희롱으로 인해 마트 창고에서 눈물 흘리는 여성이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던가.” (P. 53)

 

저자는 여성운동이 폭넓은 공감대와 당위성을 갖는 것은 사회에서 여성이 가진 소수자적 위치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은 물리적 숫자로 보면 당연히 소수가 아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기 때문에 사회적 소수자다. 따라서, 여성이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는 공동체를 꿈꾸면서 다른 소수자 집단을 차별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운동이 아니라 기득권 투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저자는 권리확장의 문제보다 시급한 것은 기본적 인권 보장과 확보라고 주장한다. , 더 많은 여성이 기득권 집단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 인간이라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권과 관련된 차별로 인해 고통 받는 여성이 없도록 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처럼 여성운동은 몇몇 알파걸들의 유리 천장 깨기가 아니라 수많은 봉순이 언니들이 함께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생각한다. 유리 천장을 부수고 올라간 찬란하게 빛 나는 소수를 위해서 아직도 대다수의 여성들은 바닥에 쏟아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에의 <개인적 체험>에서 버드는 말한다. “분명히 이건 나 개인에게 한정된, 완전히 개인적인 체험이야.” 그렇지 않다. 장애인의 문제는 개인적인 체험이 아닌 사회적인 체험이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P. 102)

 

장애인을 둘러싼 차별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성운동을 바라보는 시각과 연장선상에 있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 만큼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점철된 것도 없을 것이다. 저자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정체성은 장애로 모든 것이 규정되어버리는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은 장애 앞에서 빛을 잃는다. 왜냐하면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한 개인이 가진 수많은 장점과 특성은 장애라는 한 특성에 모조리 뒤덮여 버리고 만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로부터 일방적인 추방과 부정, 정체성 분열과정을 거치며 일상이 무너지고 삶이 일그러지는 고통을 받는다. 이런 부정할 수 없는, 부정하기 힘든 현실로 인해 장애인들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외면받게 된다. 저자는 사회는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 그 누구도 고립되고 소외받지 않게 하는 기본적인 책임이 있으며 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해야만이 장애가 개인적 체험이 아닌 사회적 체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빈곤층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동일하다. 저자는 비만의 문제를 경제적 계급의 문제로서 분석한다. 비만은 단순히 개인적인 음식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가정환경에서부터 사회구조 및 경제 계급의 차별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다는 의미에서다. 도시가 아니라 시골에 살수록 아동 청소년 비만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저자의주장을 보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문제는 변화한 시골 풍경이 아니라 비만의 사회 구조화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수 밖에 없었다. 경제소득의 불균형으로 인해 비만이 생겨나고, 비만으로 인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다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든 여러 가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무거운 정체성이 자신이 사회적 강자인지 아니면 약자인지를 결정하게 한다.” (P. 126)

결국, 스스로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정체성 중 어느 정체성이 자신을 가장 잘 규정한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나는 주류도 될 수 있고, 비주류도 될 수 있다.” (P. 8)

 

당신은 주류인가? 비주류인가?” 이는 저자의 중요한 문제제기이다.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사회 정치적 환경과 이슈들은우리를 이 같은 질문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든다. 비록 경제적으로는 강자일지라도 성정체성이나 신체적 특성 등 우리를 대변하는 다른 정체성에 관한 문제제기에서는 소수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이러한 이중, 삼중의 마이너리티적 속성을 갖고 있다. 저자가 결국 정답은 사회 구조의 변화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고 이를 위해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다. 어떤 시민 운동이든 성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외연 확장과 외부로부터의 지원이다. 저자가 여성의 권리는 곧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인권 보장과 확보를 주장했듯이 방안에 있는 코끼리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차별로 괴로워하는 서로 다른 소수자 집단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며 연대해야 한다. “우리가 중대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종말을 고하기 시작합니다. 결국에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적들의 말이 아닌 친구의 침묵이 될 것입니다."라는 마틴 루터 킹의 말처럼 말이다.

 

헤겔은 인류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것뿐이라고 일갈한바 있다.” (P. 251)

 

세상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공정한 사회로 가는 길은 하나일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과 삶이 다르므로 각자의 삶에 말을 걸고 삶의 사소한 부분부터 변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착취와 억압 없이 삶 그 자체가 빛나는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에 불러일으킨 새로운 바람들이 당신은 조용히 세상을 흔들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을 증명해낼 수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조류를 거슬러서 배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이러한 바람들이 존재하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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