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인문학 수업 - 인간다움에 대해 아이가 가르쳐준 것들
김희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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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진의 <돌봄 인문학 수업>을 읽으며 공감했던 것은 인간다움에 대해 아이가 가르쳐준 것들이라는 책의 부제처럼 육아라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부모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진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아이를 돌보며 겨우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아이를 돌본다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가져다주는 빛나는 통찰들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무엇보다 나를 경악케 한 것은, 출산의 고통도 아니고, 모유 수유의 고통도 아니고, 아기가 정말로, 너무나,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지나치게 사랑스럽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너무 사랑스러운데 그 아이를 돌보는 일은 너무 힘들어서, 그 불균형 때문에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특히 저자는 일과 사랑, 성취와 돌봄의 양립 문제를 동요 섬집 아기와 연관하여 풀어내고 있다. ‘섬집 아기는 누구에게나 익숙한 동요 중 하나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학창 시절에 접했던 익숙함과 더불어 최근에는 아이와 함께 듣는 동요 모음집에도 포함되어 있어 친근함이 느껴지는 노래였다. 하지만 동요 섬집 아기에 가지는 친근함은 동요의 1절에 국한된다는 걸 <돌봄 인문학 수업>을 읽으며 깨달았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섬집 아기 1)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 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섬집 아기 2)

    

 

익숙한 1절을 지나 만나게 되는 2절에는 일과 돌봄의 양립을 위해 애쓰는 엄마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삶을 위해 굴을 따면서도 갈매기 울음소리에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집에 남겨진 아이에 대한 걱정으로 모랫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오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어머니 말이다. 섬집 아기의 1절에 가려져 있는 2절의 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또, <돌봄 인문학 수업>을 접하면서 새로 알게 된 인생의 의미였다.

    

 

저자는 모든 인간이 자기 마음속에 자신만의 특별한 부모, 양육자의 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현실의 부모가 부재하거나, 부모와 아이가 너무 달라서 서로 이해하기 어렵거나, 부모가 정신적, 정서적 자원이 부족해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자신들 내면의 양육자 상을 통해 에너지를 보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양육자 상이 주로 모성의 이미지인 것은 기술적이고도 역사적인 한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돌봄과 육아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듯이 그것은 모성의 이미지도, ‘부성의 이미지도 될 수 있고 그보다 훨씬 더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엄마가 되고 나서야 돌봄이 둘이 함께 추는 춤, 상호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대목을 읽으며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의 가사가 떠올랐다.

    

 

"우린 긴 춤을 추고 있어. 자꾸 내가 발을 밟아. 고운 너의 그 두 발이 멍이 들잖아. 난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해. 이 춤을 멈추고 싶지 않아. 그럴수록 맘이 바빠. 급한 나의 발걸음은 자꾸 박자를 놓치는 걸. 자꾸만 떨리는 너의 두 손."

 

 

저자의 말처럼 돌봄은 둘이 함께 추는 춤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절대 출 수 없는 춤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선율에 맞추어 추는 춤은 아름다운 장면만 담기지 않는다. 때론 춤을 추는 과정에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때로는 박자를 놓쳐서 상대가 손을 떨게 만들기도 한다. 이는 어떠한 형태의 인간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깊숙이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이든 저 안쪽에 반짝이는 무언가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모든 아이는 각기 특별하게 태어나며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사랑의 눈으로 그 특별함을 발견하고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 깊숙이 들여다보는 사람이 부모라면 아이들에게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도 부모가 아닐까? 아이와 가장 가까이 오랫동안 접하는 사람은 부모기 때문에 아이의 개성과 자질, 좋아하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부모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그 과정은 부모가 아이를 향한 일방적인 것이 아닌 상호교감이 이루어지는 둘이 함께 추는 춤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돌봄과 함께 성숙해가는 그 아름다운 과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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