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율리와 타쿠의 89일 그림일기
배율.진유탁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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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을 듣고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관심이 갖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 치앙마이에 대한 묘한 끌림과 그곳에서는 왜 천천히 걸어야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겼던 관심을 누르며 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저 한구석에 넣어 두어야만 했던 건 아무래도 여행과 관련된 책인것 같아서 였다. 두돌이 갓 지난 아직 어린 딸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치앙마이로 여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은 멀어만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인 율리와 타쿠도 출근길에 자주 지나던 공덕역에서 우리도 언젠간 공항에 가려고 공덕역을 지나는 날이 오겠지?’라는 말을 자주 주고 받았다는 대목을 읽고, 내가 여행이 갖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선택을 했던 건 아닌지 반성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만나게 된 건 우연에서 비롯된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하고 있는 독서모임에서 다음 모임 도서로 이 책이 거론되었던 것이다. 독서모임에서 책을 선정하는 방식은 회원들 각각이 자신이 꼽은 도서와 그 이유에 대해서 1분 정도 홍보의 시간을 갖고 표결에 부치는 것이었다. 이 책이 내가 아닌 다른 회원에 의해서 후보로 나왔을 때, 그리고 마침내 최종선정 도서로 투표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선정된 도서도 아닌데 약간의 떨림과 흥분을 느꼈다.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책을 읽으며 묘한 설레임과 흥분을 느꼈다. 그러한 감정은 저자들이 본격적으로 치앙마이에 대한 여행기를 전개하기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 육아를 하게 되면서 자발적으로 포기하게 됐던 것이 몇가지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해외 여행 공연 관람이었다. 짧은 국내 여행은 아이를 동반하고 갔던 적이 있었는데, 비행기를 타고도 장거리로 움직여야 하는 해외 여행은 아이를 위한 짐의 무게와 도착해서도 호텔 밖의 공기를 맡아볼 수 없으리란 체념에 지레 포기해야 했었다. 또 결혼 전이나 신혼시절에는 한달에 한번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를 즐기는 것이 나름의 취미생활이었는데, 육아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이는 자연스럽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하지만 저자들이 여행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서 막 공항으로 떠날 때의 심정,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그날의 셋리스트를 예상하면서 느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저자들의 여행기에 쉽게 동참할 수 있었고, 저자들의 여행이 돌이켜보면 좋았던 날들로 남는 성공적인 여행이길 기원했다.

 

아무리 흐른 날에도 구름 위에는 언제나 맑게 개인 하늘과 빛이 있다. 흐린 날도 맑은 날도 돌이켜보면 좋았던 날들로 남을 그런 여행이 되기를!! (p. 23)



 

책 제목을 듣고 생겼던 호기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지 처음에는 왜 치앙마이이었을까?’ 왜 천천히 걸어야 할까?’에 주목하며 읽었다. 저자들은 별 이유는 없고, 한번 살아볼 만 한 것 같아서라고 했지만 그래도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책 속에서 단서를 찾아 나선 것이다. 단서라고 생각되는 것들은 책의 곳곳에 있었다. 미소의 나라 (Thailand, The Land of Smiles)라고 불리는 태국의 이미지도 한 몫 했을 것 같고, (여기에 와서 문득 처음 보는 많은 얼굴들이 나를 향해 짓는 미소를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 반가워 또는 이곳에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p. 38), 디자이너란 저자들의 직업을 고려해보았을때,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로 불리는 치앙마이의 특성이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며 세계를 떠돈다고 하는 그 이름은 디지털 노마드’,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나 다른 몇몇 직업과 함께 디지털노마드로 일하는 사람이 많은 대표적인 직업이었다. 그 일하기 좋은 도시 리스트의 상위 랭크, 아니 아예 디지털노마드의 성지로 불리는 위상을 가진 곳이 바로 태국, 치앙마이였다, p. 95)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에 대한 호기심은 점점 줄어들었다. 더운 날이 대부분인 태국에서는 흐린 날을 좋은 날씨로 부른다고 한다. 날씨가 좋지 않다고 툴툴거릴 게 아니라 덥지 않아서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에 대해 여행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떡이게 되었던 것이다.

 





자고, 먹고, 일하고, 더불어 놀고, 운동하는 일상들이 작은 병정 무리마냥, , , , 줄지어 간다. 에너지가 넘치는 여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익숙했던 일상도 아닌, 딱 그 중간쯤 되는 생활. 별 것도 아니면서 가끔은 새로 발견하고 고민하게 되는 것들이 하루를 채우는 날들. 내가 알기론, 바로 그런 걸 평화로운 날들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P. 116)




 

이 책은 저자들의 89일간의 치앙마이 여행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처음엔 이 여정을 여행이라고 불렀지만 언젠가부터 살이라고 부르게 됐다. 하루하루 화려하고 신나지는 않아도 매일이 은은히 빛나고 안심되는 것. ‘여행과는 제법 다른 살이라는 것. , 치앙마이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색 중에서 그들만의 색을, 치앙마이를 즐기는 그들만의 방식을 찾아냈던 것이다.

 




나에게 치앙마이는 다채로운 색을 내보이며 다가왔다. 그 새로운 색들이 내 기억에 알록달록 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앉아 치앙마이의 색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화려한 색깔들 사이로 어느 평범한 하루가 떠오른다. 평범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평범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하루를 새롭게 만드는 타국의 색. (P.178)





왜 치앙마이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어쨌든 떠나봐야 한다는 저자 타쿠의 말에 동의한다. 그들은 89일간의 여정의 끝에서 그들은 그들만의 답을 찾았고, 나는 그들이 답이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지레 포기했던 건 어쩌면 여건이 안되서 그런것이 아니라, 나와 맞는 방식의 여행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나도 나만의 답을, 우리 가족만의 색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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