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김선희 지음 / 예담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철학 

낯설고 고루한 분위기를 담고있던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어느샌가부터

시대의 지침이자 만병통치약처럼 현실을 뒤덮기 시작했다.

철학, 사회학 등 '중요성'은 알지만 '선호'되지 않던 학문들은

바야흐로 그들의 지위가 회복되는 르네상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가족부터 사랑에 이르는 개개인간 관계의 균열

자유와 행복의 결핍 그리고 욕망

더하여 나 또한 고민하고 있는 '변화와 시간'에 대한 강박증까지.

이번 책은 현실의 다양한 문제로 인해 시름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인문학, 그 중에서도 철학이라는 안락의자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등의 전근대 철학자부터

샤르트르, 니체 그리고 푸코같은 가까운 시대의 철학자까지

내로라하는 작가를 섭외하여 철학이라는 해결책에 공신력을 더한다.

공자나 맹자 같은 동양 철학자 또한 빼놓지 않고 등장시키니,

철학자 선정에도 꽤나 공을 들인 흔적이 엿보이기도.

 

 

 

 

 

나를 위로하다

'위로'라는 단어는 '노력', 그리고 '불가항력'과 곧잘 쓰인다.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 불가항력의 개입으로 좌절을 맛보게 되고

이 때의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 '위로'인 셈이다.

 

 

다름아닌 '위로'라는 단어가 제목에 배치된 이유란.

일단,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괴로움과 슬픔은 사회 시스템이라는 불가항력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외모가 나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사회는 나의 덩어리와 이미지에만 반응한다. 

명품이란 이미지의 공허한 장난질이지만, 사회는 그 이미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불가항력'이라는 단어처럼 우리가 시스템에 손을 대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뀌는 수 밖에 없는데, 이 또한 순탄치 않다는 점이 '위로'가 필요한 두번째 이유다.

나와는 다른 타자를 배제하지 않기. 욕망의 크기 줄이기. 사랑의 균형점을 유지하기.

마땅하고 당연하지만 여간해선 이루기 힘든 명제들이기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주장되고는 공허하게 사그라든다.

압도적인 명제들이기에, 우리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곤 한다. '위로'가 필요한 것이다.

  

 

 

위로뿐이다.

이렇게 현실에 치이고 괴로워하는 우리는

충분히 철학의 보듬어줌을 받을 만 하다.

허나 위로는 보듬어 주는 것에서 종결되기에 

우리는 위로가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없다는 섬뜩함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어떤 고통이 어떤 식으로 한 사람을 찾아왔고 어떤 불만족이 어떤 경로로 방문하게 되었는지를 예시하는 사례집에 가깝다.(...)

철학자들의 시대를 앞선 혹은 시대를 바꾼 통찰들 역시 고통과 불안을 이기고 자기를 버리지 않을 수 잇게 해주는 비법이 아니라 그저 그런 사고의 실험을 담은 판례집에 불과하다. 이 책은 딱 여기까지다.

 

 

사례의 모음집이자 판례집인 이 책은 '내가 겪는 문제가 단지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다'라는 공감은 주되

그 문제가 나의 탓도 있지만 사회라는 불가항력의 탓도 있기에,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는 못한다.(그 많은 철학자들도 아직 해결하지 못했지 않은가.)

 

 

책에 적힌 누군가의 태도들 가운데 이 책을 읽는 누군가의 주파수와 딱 맞는 것이 있기를, 혹은 상당한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동의와 거부에서 태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동의와 거부를 만들어낼 수 잇다면 이 책은 충분한 소임을 다한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한 철학자들의 태도, 저자의 사유 가운데 몇가지 만이라도 동의와 거부를 이끌어내길 바란다는 저자의 겸손한 대답.

해결책은 주지 못하지만, 다양한 사례로 우리를 보듬어주려는 저자의 의도에 걸맞게

이번 책에서 나의 동의를 이끌어낸(그래서 나를 보듬어준) 문장으로 이번 서평을 끝맺음 하련다.

 

 

 

수많은 새해 다짐에 나열된 단어들의 공통분모를 하나 뽑아 제목을 만든다면 그것은 '더 나은 내가 되기' 혹은 '현재의 나를 벗어나기'쯤 되지 않을까? 다짐이 강하거나 항목이 많을수록 삶의 의지가 강하고 능동적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다짐이 강력할수록, 항목이 많을수록 현재의 자기를 부정하려는 태도도 강한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를 채찍질해야 한다면 그것은 마음 깊숙이 불안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우리는 이토록 강박적으로 자신을 바꾸려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토록 현재의 나를 부정하고 실체도 없는 새로움을 구하는데 삶의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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