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번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까지 마음속에서 많은 혼란을 겪었어요. 이미 정평이 난 작가들의 충분한 깊이를 가진 문장 중에서도, 박웅현이라는 광고인의 심(心)적 체를 통해 탈탈탈 걸러진 엄선된 문장들. 양질의 글귀들은 하나하나가 울림을 주었어요. 저에게 도달한 수많은 울림의 파동들은, 각자의 파형을 유지한 채 마음속으로 번져나갔답니다. 양과 질 둘 다에서 상당한 만족을 얻었지만, 저 만의 감상을 온전히 활자로 옮기는 것에 꽤나 큰 비중을 두고 있던 저로서는 이번 서평이 특히나 버겁게 다가왔답니다. 


박웅현이 이끌어가는 강의 하나 하나는 책의 주제나 줄거리에 큰 관심을 두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책이란 방대한 글귀의 조합입니다. ‘책의 울림이 아닌 문구의 울림에 귀 기울이기’는 그가 거듭 강조하는 독서의 비법이자 강의의 핵심입니다. 문장 하나하나라는 작은 부분에 발을 맞추다 보면 자연스레 보폭은 작아지고 걸음걸이도 느려집니다. 그 단계에서 박웅현은 주위를 한번 둘러볼 것을 권합니다. 김훈을 인용하면서 그의 주장을 한 번 더 역설합니다.


미국의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미국의 전 국토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망이 생긴 덕분에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요. 횡단은 하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목적지까지 빠르게 갈 수는 있어도, 그동안 관찰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중략)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로 봐야 보이는 것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p.66

 
박웅현은 천천히 읽기가 삶을 허투루 바라보지 않는 안목을 준다고 유혹합니다. 광고인으로서 강의 후 책이 더 많이 팔렸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는 어설픈 겸손 안에서, 그가 진정 전해주고 싶은 울림은 바로 문장을 ‘읽어라’ 보다는 ‘느끼라’는 것입니다. 문장을 곱씹고, 사유함으로써 얻어지는 새로운 일상에 대한 즐거움을 혼자 만끽하기 아까웠나 봅니다. 


이철수의 한 문장을 읽고 나서는 열매를 그냥 못 지나칩니다.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옛날에는 1킬로미터를 걸어가면서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지금은 베인 나뭇잎, 날아가는 새, 반짝이는 빗방울이 다 아름답습니다. 제가 죽을 때 떠오르는 장면은 프레젠테이션 석상에서 박수 받는 순간이 아닐 겁니다. 아마 어느 햇살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어느 나뭇잎이 떠오를 것 같고, 어느 햇살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p.47 

 
8강에 걸쳐 박웅현은 다양한 주제로 각양각색의 글귀들을 담았습니다. 얼어붙은 감수성을 가진 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깨뜨려주기 위한 노파심 인가봅니다. 그의 뜻에 따라 저도 일부러 마음에 드는 구절들을 서평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글귀가 준 울림을 그대로 표현 해낼 자신도 없을뿐더러 제가 감동을 얻은 구절을 나열해 두는 것이 작가의 의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새로운 독법(讀法)을 통해 제가 얻은 즐거움을 언급하는 것이 의도에 꼭 들어 맞다고 봅니다. 

 
구구절절 적어두고 보니, 광고인 박웅현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만의 독법을 이 책을 통해 광고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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