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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에게 나를 바친다 ㅣ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 / 살림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서평을 쓸 때는 으레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그대로 글로 표현해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단순히 만족했네, 아니네 하는 차원을 넘어서 그 이유까지도 논리적이고 자세하게 기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여기에 공을 많이 들이곤 하는데요. 허나 감정을 왜곡없이 글로 풀어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이번 소설 '살인자에게 나를 바친다' 역시 복합적인 감정으로 서평을 쓰는 내내 머리를 싸매쥐게 했답니다.

중견기업 '솔라전기'의 창업자인 히나타는 자신이 6개월밖에 더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됩니다. 독신에 회사도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터라 인생에 대한 큰 미련은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생각나게 됩니다.
『나는 이제 6개월밖에 못 산다고 해. 그러니까 어차피 죽을 거라면 자네가 원하는 방법으로 죽어 주지. 나는, 자네가 날 죽이길 바라네. - p.13』
그 후 이타미 시에서 '솔라전기'의 연수가 개최됩니다. 연수에 참가한 유능한 4명의 사원. 허나 이 연수는 히나타가 사원중 하나인 가지마에게 살인의 기회를 주기 위한 무대였습니다. 죽으려는 자 히나타는 죽이려는 자 가지마를 위해 각종 장치들을 설치하여 가지마의 복수를 부추깁니다. 말 그대로 살인자 가지마에게 나를 바치는 겁니다. 허나 이 무대에 유카라는 방해자가 등장하게 되면서 소설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시작은 참신한 발상으로 출발합니다. 범인이 시작부터 제시되는 '도서추리소설'의 형식이 큰 틀을 이룹니다. 여기에 범인에게 '죽으려 한다'는 설정을 첨가하여 '죽이려는 자'인 범인의 심리를 뿐만 아니라 '죽으려 하는자인 피해자'의 심리도 동시에 펼쳐보입니다. 심리 묘사의 내용 또한 매끄럽게 이어집니다. 범인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죽일까?',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범인에게 범행의 기회를 줄까?'하는 두 사람의 생각과 심리가 전부 수긍이 될 정도로 자세하게, 논리적으로 구성되어서 좋았습니다. 살인을 한다 혹은 살인을 당한다라는 발상이 쉽게 이해되는 감정은 아니니까요.(특히 후자요.)
지구력이 달려서일까요. 사건의 해결부는 그다지 탐탁지 않아요. 작가 이시모치 아사미는 철저한 논리에 입각한 사건의 진상 추리를 통해 결말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주로 사용합니다. 즉, 탐정이 백방으로 뛰어다니면서 단서를 수집하는 '몸으로 하는 수사'가 아닌, 철저한 논리로 합리적인 진상을 도출하는 '머리로만 하는 수사'를 표방합니다. 허나 논리에만 근거한 진상 추리는 말 그대로 타당성 있는 논리가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요. 소설 속에서 유카가 펼치는 추리는, 진상을 모두 안 채 여기에 논리를 억지로 끼워 맞춘듯한 느낌을 줘요. 논리로 결말을 유도해내는 것이 아니라 결말에서 논리를 만들어내는, 본말의 전도를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사건의 해결부까지 본 후에는 혹평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소설의 논리적, 완결성있는 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저로서는 해결부가 굉장히 불만족스러웠으니까요. 허나 서평 문두에 언급했듯이 소설의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는데요. 결말에서 소소한 장치 하나를 발견 했기 때문입니다. 반전이라는 설명은 굉장히 버겁고요, 문자 그대로 '소소한' 장치에요. 그런데도 책장을 덮고 나서도 기억에 아른거리네요. 책의 만족도도 오락가락 합니다.
소설이 만족스러웠는지 아닌지. 하나가 좋으면 다른 하나가 미워지고, 그게 미워지면 다른 하나가 좋아지고. 혼란스러운 감정과 함께 이번 서평을 갈무리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