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preveiw - 1
나에게 이사카 고타로라는 고유명사는 이미 믿을 만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그가 잔뜩 헝클어 놓은 이야기의 퍼즐은 조각이 모자라 이해가 되지 않은 적도 없고, 넘쳐서 전혀 뜬금없는 인물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딱 퍼즐 조각에 그려져 있는 만큼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것도 한 조각 한 조각을 최대한 이용해서. 그리고 퍼즐이 완전히 맞추어졌을 때는,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짠 하고 광채를 발한다. 빈틈없이 디자인 잘 된 그의 소설에 매번 매료된 나로서는, 이사카 고타로라는 로고만 보고도 주저없이 선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preview -2
신경 써야할 일들이 연거푸 이어지면서 독서시간을 챙기기도 버거웠고, 그나마의 짜투리 시간도 이미 읽고 있던 책들에 투자해야 했다. 이사카 고타로는 믿을만한 카드임에도 불구 예전 작들과는 간극이 느껴진다라는 각종 평가에, '마리아 비틀'이라는 신작을 읽기 위해 전작을 찾아보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 무엇 하나 녹록치 않은 상황에, 더하여 각종 혹평이 쏟아지는 가운데, 이번 책 '그래스 호퍼'의 첫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review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안고 있다. 아내의 복수를 꿈꾸는 자. 직접 손을 더럽히지 않는, 자살을 유도하는 킬러이지만 그가 죽음으로 내몬 사람들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 일가족 참살 전문 킬러라 불리는 섬뜩한 호칭과는 달리 그의 상관 앞에선 꼼짝도 못하는 자.또한 정치인, 밀치기라는 또다른 킬러 그리고 그의 가족들 등이 다양한 인간의 군상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곳곳에 얽혀온다. 각자는 다른 이상을 좇고 있지만 결국 하나의 접점으로 모아진다. 퍼즐처럼 흩어진 조각이 하나로 모인다. 이사카 고타로 맞다.
 
주위에서 혹평이 많이 쏟아진 탓이랄까, 나이에 맞지 않게 아이돌에 대한 팬덤을 드러내는 것마냥 쑥스럽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꽤나 재미나게 읽었다. 비록 후반부로 갈수록 세 인물이 뒤엉켜 가는 과정이 억지스럽게 전개되는 면도 있었지만, 세 인물들 뿐 아니라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심지어 잠깐 언급 되었을지라도)을 낭비없이 엮어내는 깔끔한 솜씨, 무엇보다도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갈래의 목적에 걸맞게 단숨에 읽어내려갈 수 있었던 가독성 면에서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다만 아쉬웠던 부분은 엔터테인먼트 자체로 끝나버린 점이었다. 이야기라는 것을, 사소한 곳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그만의 메시지를 담기 위한 장치처럼 사용해왔던 그이기에, 이번 소설은 본말이 전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베베꼬인 이야기가 차츰 풀어지면서,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드러나는 그만의 묘미가 간헐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그 채도는 상당히 옅었다. 그래스호퍼라는 제목이 상당히 무안해진 느낌도 있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까지 모두 맞추어 졌는데도 그 위에는 아무런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형국. 좀 허무한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조각 한조각을 신나게 끼워넣는 재미를 맛보았으니 허세를 위해 이번 책을 외면하며 혹평을 던지기엔 양심이 찔린다. 사실 요새는 자기계발서에 목매느라 각종 사유와 시그널에 머리가 지끈지끈했던 터. 오랜만에 생각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소설 한권도 나쁘지 않았다. 이번엔 이사카 고타로의 네임벨류에 호평까지 더한 후속작 '마리아 비틀'로 재미난 퍼즐 한판 제대로 시작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