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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부탁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1년 7월
평점 :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유명인과 인터뷰를 나누는 코너가 있습니다. 최근에 들은 방송분에는 은희경 작가님이 나오셨습니다. 늘 써오던 소설이 아닌, 산문집 한권을 가지고서요. 내용을 조금만 발췌 해볼게요.
『속살을 들킨 것 같지만 이게 바로 내 모습이다, 등단 16년 차인 소설가 은희경 작가가 첫 산문집을 내면서 한 말입니다.』
『소설에서는 마음대로 상상한 걸 그냥 쓰면 되는데 산문은 저라는 사람이 말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에 제약이 많아요』
제가 방점을 찍고 싶은 부분은 '산문집'이라는 부분이지, '은희경 작가님'은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고자 하는 오늘의 이야기는 산문집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바로 오쿠다 히데오의 산문집 '야구를 부탁해'입니다.
참 많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거쳐왔어요. '공중그네'를 필두로, '걸', '마돈나' 인더풀'같은 소설들이 파노라마의 앞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쉽고 유쾌한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물론! 그의 소설은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것 또한 매력적이에요. 골치아픈 일에 휩싸인 주인공들에게 직접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여지를 남겨둔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제는 대부분 그들의 마음가짐에 기인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너무 쉽게 다가온 연유일까요? '갖은 역경이 극한까지 닥치지만 결국 어찌어찌 돌파구를 찾아 반전의 기회를 찾아낸다'는 포맷을 그대로 유지하는 그의 소설들은 여전히 쉽게 읽히긴 했지만 이내 질려버리게 됐어요. 주인공이 겪는 고난의 정도는 점점 더 가혹해져갑니다. '최악'처럼 한층 두껍게, '방해자'처럼 두 세권에 걸쳐서, 주인공들을 더욱 가혹한 운명의 무대에 세워요. 그러나 우리는 이미 결말을 예상하고 있어요. 어떻게든 그들은 헤쳐나갈 것이란걸. 오래된 연인처럼 일거수 일투족이 예측 가능해지고, 이는 결국 오쿠다 히데오에 대한 권태감으로 이어졌어요.
'우리 당분간 시간을 갖자'라는 느낌으로 한참 떨어져 있던 중 오랜만에 만난 그의 책은 '올림픽의 몸값'이었습니다. 더이상 그는 뻔한 결말을 선보이지도 않았고, 유쾌함을 위시하지도 않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이야기로 겉모습을 치장한 모양새는 변함없었습니다만 그 안의 이야기는 한층 진지해졌습니다. 한결같이 유쾌한 옆집 아저씨일 것 같았던 그의 이미지 한켠에 대해 문뜩 의문이 듭니다. 오쿠다 히데오, 그는 유쾌한 이라부가 아니었나? 하고요.

'올림픽의 몸값'을 만나고 1년 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의 작품이 '야구를 부탁해'입니다. 잊고 있다시피 했던 터라 더욱 반갑고 그랬습니다. 일단 제목에 딴지를 걸자면, 이 이야기는 야구 이야기가 아니에요. 작가가 여행하고, 관람하고, 생각한 것을 기술한 일종의 기행문이자 산문집이에요. 이야, 비로소 오쿠다 히데오 그의 일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겠습니다. 앞에서 인용했다시피 산문집은 '상상한 것을 쓰면 되는' 허구가 아닌 '저라는 사람이 말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는' 실재이니까요. 오쿠다 히데오. 그는 공중그네의 유쾌함일까요? 아니면 '올림픽의 몸값의 진지함'일까요?
은희경 작가님은 산문집을 통해, '속살을 들킨듯' 조심스럽게 그녀를 드러냈다고 해요. 그러나 '야구를 부탁해'는 오쿠다 히데오를 당당히 드러냅니다. 그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골수 팬이며, 흘러간 로큰롤에 향수를 느끼고, 활동적이지는 않지만 호기심은 가득한 중년입니다. 그의 기호를 반영하는 야구장, 뉴욕에서 부터 중년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롤러코스터, 락 페스티벌에서까지, 그는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아요. 하지만 소설 곳곳에 냉소적으로, 비판적으로 툭툭 내뱉는 것도 잊지 않는답니다. 이번 책을 읽은 후에 알았습니다. 그는 유쾌함과 진지함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이번에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읽은 것이 아니라, '오쿠다 히데오'를 읽었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