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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절구역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장점숙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섬뜩했습니다. 노인상호처형제도라는 설정 자체부터, 노인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야기까지 시종일관 섬뜩했습니다. 잔인하고 불편한 살인사건이나 오싹하고 무서운 귀신 이야기와는 또다른 섬뜩함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노인상호처형제도라는 제도하에서 살아남기위한 노인들의 사투를 그려냈습니다. 이 제도는 말 그대로 노인 상호간 서로를 처형하여 노인인구를 조절하기위한 제도입니다. 고령화사회로 나아가면서 젊은층의 일자리 문제, 과도한 부양 문제등에서 벗어나고자 노인 인구를 줄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노인인구를 조절하는 방법 또한 가히 엽기적입니다. 일본을 수십개의 지구로 나눈 후 각 지구에서 배틀로얄의 형식으로 이른바 '실버 배틀'을 진행합니다. 한달간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방법으로 인구가 조절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단 한사람만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며 한달이 경과한 후 두사람 이상이 살아남았을 경우에는 그 사람들 전원이 후생노동성 산하의 중앙인구조절기구(CJCK라고 언급합니다.)의 처형 담당관에게 처형됩니다. 기껏해야 한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형국입니다.
잔인하지 않다는 가정하에서, 배틀로얄 형식의 소설을 선호하긴 합니다. 배틀로얄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작은 생태계로 가정했을 때 그 생태계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생존방식이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자, 강자의 그늘 아래에서 굽신거리지만 호시탐탐 틈을 노리는 구밀복검의 인간형, 숨어지내는 사람, 친화력으로 사람들을 모아 그룹을 이루어내는 사람 등 각 참가자들이 자신의 성향에 맞춰 삶의 방식으로 배틀로얄에 적응하는 모습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들의 생존에 있어서 '가장 최적화되고 합리적인 모델'을 찾아나서는 모습을 보면 제가 조물주가 되어 세상을 보는 듯한 뿌듯한 기분이고 그럽니다. 허나 이 소설은 조금 다릅니다. 이 소설에서도 다양한 노인들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배틀로얄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나옵니다. 허나 그때의 기분은 뭔가 절박하다고나 할까요. 조물주라는 비유를 한번더 이용하자면 뿌듯함 보다는 연민의 감정이 드는 셈이지요.
고령화가 진행되고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 허나 '이제 노인상호처형제도가 남일 같지 않다'라는 우려, 즉 고령화에 대한 걱정은 생각보다 들지 않았습니다. 설정 자체가 굉장히 극단적이기 때문일까요. 고령화 사회에 대한 걱정보다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상황 자체에 좀더 관심이 쏠렸습니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각 개개인의 상황에 대해 모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절박했기 때문일까요. 또한 깊게 생각할 것도 없기 때문에 책장 넘어가는 속도도 굉장합니다. 소설속 주인공들의 목적은 단순하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아야 한다.'
겉으로는 엽기적이고 기가 차고 익살스러운 살인사건들이 연속됩니다. 코끼리를 몰고 나오거나 작살에 날아가버리거나.... 허나 이 모든 상황은 살아남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주인공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애써야할 뿐입니다. 사실 늙은게 그렇게 큰 잘못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 섬뜩하고, 연민이 들고 그럽니다.
섬뜩하면서도 슬픈 문구. '내가 살려면 모두를 죽여야 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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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결에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모델은 지금 읽고 있는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타인을 상대로 행동하는 방식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것은 협동 - 상호성 - 용서이다. 다시말해서 한 개인이나 조직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조직이나 집단을 만날 때 먼저 협동을 제안하고,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서 자기가 받은 만큼 남에게서 주는 데에서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가 도움을 주면 이쪽에서도 도움을 주고 상대가 공격을 하면 똑같은 방식과 똑같은 강도로 반격을 가한다. 그러고 나서는 상대를 용서하고 다시 협동을 제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 상상력 사전 p.35
아쉬운 것은 이 책 <인구조절구역>에서는 쓸모가 없는 이론이라는 점입니다. 결국은 한사람만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입니다. 부부, 친구, 이웃 등 모든 관계가 소용이 없습니다. 힘들게 살아남은 이들이 결국 정부를 상대로 공격하여(비록 실패하지만요.) 그들의 그간의 고생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도 다 이 때문인것 같습니다.
살아남는다면 결국은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살아남든 죽든 비극인 것.
그렇기 때문에 참 섬뜩하고, 연민이 들고 그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