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5
토머스 모어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올 봄, 갑자기 고전들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토피아', '국가론', '군주론', '꿈의 해석' 등의 책을 충동구매 했습니다...

그 중 '유토피아'를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책을 읽기 전에는 왠지 쉽지 않을 것 같아 미루고 미루다가, 늘 책상 위에서 절 바라보는 듯 놓여있는 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드디어 마음을 굳게 다지고(?) 책장을 폈는데... 막상 책을 딱 읽기 시작하니 내용도 그리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더군요. 왠지 고전이라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유토피아라는 단어 자체는 원래 뜻풀이를 하면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런 합성어가 '완벽한 이상향'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버린 거죠.

이 책은 전개 방식이 조금 특이합니다. 저자인 토마스 모어는 3인칭 관찰자 입장에서 '유토피아'에서 5년여간 살다온 '라파엘'이라는 한 노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기록한 것처럼 쓰여졌습니다.

그런 구성 때문인지 처음엔, 이게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었나? 하는 무지한(?)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는, 유토피아가 너무나 급진적인 사상을 담고 있어 사회적, 정치적 파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해설이 있네요.

책에서 묘사하는 유토피아는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주창할 때 제시되는 비전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루 6시간 정도 성실하게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고, 사유재산에 대한 개념이 없어 허례허식이나 사치로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먹고 남을만큼 음식이 생산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 있으며, 배우고자 하면 누구나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얼핏 보면, 가가멜과 아지라엘이 없는 행복한 '스머프' 세상같지 않나요?

만약 사회가 저렇게 돌아갈 수 있다면, 왜 현실은 그렇지 못할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것은 아마도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가 부유하고 넉넉한 생활을 원하는 것도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니까요. 남들보다 더 갖고 싶어하는 것도 단순히 물건을 더 많이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으로부터 '행복'을 얻기 때문이지 않나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먹고, 살고, 배우고자 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을 느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유로울 때, 어떤 사람은 명상을 할 때,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추종할 때, 어떤 사람은 남을 도울 때, 어떤 사람은 공부를 할 때 등 행복감을 얻어가는 과정은 다 다릅니다.

그런데, 유토피아에서는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고, 질시의 마음이 없는 상태면 모두가 행복하게 저런 모습으로 살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네요. (유토피아는 1516년, 지금으로부터 거의 500년 전에 씌여졌습니다. 당시엔 먹을 것, 입을 것에 대한 기본적 욕구도 충족되지 않는 사회였기에 어쩌면 이런 가정을 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역사적 발전 과정을 보면, 사회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윤택한 삶의 질을 영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발전해가는 속도는 비록 더디지만요..

어쩌면 그렇게 시간이 흘러흘러 언젠가는, 정말 저렇게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을때까지 삶을 즐기고, 감사히 여기고, 항상 행복해하며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갖춰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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