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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세븐틴
최형아 지음 / 새움 / 2018년 2월
평점 :
침묵 대신 고백과 복수를 택한 한 여자의 이야기.
올리메이드 여성병원 의사 윤영.
그녀는 병원에서 다양한 여성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아름다운 미를 추구하는 이를 만나기도 하고 은밀한 수술을 위해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특별한 의사는 그녀들과 의무적인 상담을 하지만 환자들 하나하나 사연을 들으면서 자신의 숨겨진 감정들을 끄집어 내면서 억누른다. 그런 어느 날 심희진이라는 환자를 만나게 되면서 그녀는 흘러나오는 감정들과 기억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고백과도 같았던 그녀의 상담. 그리고 그 상담 내용이 어디선가 경험한 듯한 느낌의 내용들. 의사로서 대하기보다는 서서히 그녀를 피해야 할 거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윤영은 그녀와의 상담을 이어가지만, 불감증 수술을 받고 얼마 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 두고 간 심희진의 핸드폰으로 인해 그녀의 가족과 만나게 되면서 윤영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열일곱 살의 어느 기억을..
윤영은 희진을 통해 과거 자신이 경험한 한 사건을 떠올리게 되면서 그녀가 자살을 하게 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접적 영향이든 간접적인 영향이든 윤여과 희진은 한 남자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추악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읽는 내내 어두운 감정이 올라온다. 분노라든지 # me too 내 딸들..
우리나라 여자들 치고 과연 성희롱, 성추행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안 당해본 사람이 있을까?
이런 글을 읽다 보면 과거의 경험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만나던 코트 입던 아저씨라든지 동갑내기 남자아이들의 심한 장난과 농담등등.. 참아야 했던 것인지 아니면 복수를 했어야 했던 것인지 ..
하지만 결론은 일이 일어나면 피해자보다 가해자들에게는 그 일이 장난, 추억, 경험담이 돼버린다는 것이다.
거기에 피해자가에게 오히려 원인을 물어야 했고 반성을 요하게 된다는 것.
p43
바보같이. 겁도 없이. 왜 그랬어 …….
초반 윤영이 과거의 소녀를 떠올리고 안타까움과 속상함에 뱉어내는 대사다.
어른이 된 그녀 임에도 소녀인 자신에게 한탄을 하고 있는 게 우리 피해자들의 삶이라는 듯이.
너무 속상하다. 왜 자신의 탓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고, 내가 그 시간에 다니는 게 잘못된 것인 양.
p113
열일곱 살의 가을. 어둠. 비. 얼굴 없는 남자애들. 피와 정액.
그것이 앞으로 내가 기억해야 할 첫 남자의 이미지라니 …….
p265
윤영은 울고 또 운다. 열여덟이 열아홉이 되고 스물이 되고 스물을 넘고 또 넘어 지금 윤영의 나이가 되도록.
p290
찰거머리처럼 너는 우리의 기억에 붙어 기생해온 악몽이야. 죽지 않은 한 떼어낼 수도 떼어내지지도 않아. 그때마다 나는 매번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느껴. 내가 왜 너 같은 인간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 하지 ? 대답해봐. 이 모든 게 네가 벌인 짓들이었잖아!
이야기 속의 윤영이지만 이런 경험을 한 번이라도 가진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박힌다.
아름답고 즐거운 기억만으로 삶을 살아도 모자랄 판에 이 무슨 어둠의 기억인가.
거기에 그 기억은 끄집어 낼 수도 없고 어디에 이야기할 수도 없다. 쓰다듬어 줄 수도 없는 환경이었고 입에서 뱉어내는 그 순간 낙인이 되기에...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모든 여성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어두운 기억이 더 이상은 어둡지 않기 위해 서라도, 또 나 혼자만의 경험도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경험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고치고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그저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잊어버려도 되는 체험 따윈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한 개인의 체험은 우리 모두의 체험이기도 하다. 내가 곧 타인이고 타인이 곧 나다. 이런 생각들이 우리를 연결해 줄 것이다. -작가의 말
'성'은 민감한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행동에 있어 장난이었어, 아니면 말고 식의 가해자들의 행동. 나중에 한 반성이 정말 진정한 반성일까 하는 의문들.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성희롱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 대한 시선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 윤영의 복수에 희열을 느끼게 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하지만 하게 되다면, 성공한다면,
그 모든 일을 해내고 나서 느끼는 통쾌함. 후련함.
과거의 나 자신을 이제야 흘려보내고 나 자신의 삶을 살게 된 안도감 등등..
최근 일어난 미투 운동들도 이런 마음으로 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당한 일 다른 이들은 당하지 않기 위해 나 역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고 경고하는 것.
그리고 그 가해자가 똑같은 일을 또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앞으로 자라날 내 딸들에게는 조금 더 밝은 경험과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나 역시도 #me too 운동에 지지한다.
이제는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을 가지고 반성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피해자의 고통이 덜어지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