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딱총 ㅣ 겨레아동문학선집 5
현덕 외 지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엮음 / 보리 / 1999년 4월
평점 :
현덕의 무수한 작품들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대게 가난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그것은 마치 아이들로서는 가난을 스스로 극복할 힘은 없지만, 그 가난함 앞에서 무력감을 보이지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듯한 모습이다가 마침내는 원하는 것에 상응하는 것들을 갖게 되면서 결말을 맺는다.
똑같은 상황에서 어른들이라면 '가난'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이나 괴로움을 더 많이 드러냈을테지만, 또다른 작품집 <너하고 안놀아> 에서처럼 아이들은 '가난' 그 자체보다 그 속에 존재하는 아이들세계의 즐거움과 우정, 자존심과 의리 등을 훨씬 강하게 보여준다.
작품 <고구마>에서는, 6학년 아이들의 약간은 성숙한 의식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수만이는 매일 교장선생님댁의 마당도 쓸고, 물도 긷고하여 월사금을 내는 가난하고 활기가 없는 아이다. 어느날 농업 실습으로 심은 고구마밭에 서너개의 고구마가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아이들은 모두 수만이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단 한사람, 기수를 제외하고......
주머니가 불룩해 있는모습을 보고 모두들 그것이 훔친 고구마일 것임을 확신하고 있는데, 마침 점심시간에 모두들 식사를 꺼낼 때, 수만이는 서랍에서 뭔가를 슬쩍 꺼내어 교실을 나간다. 기수를 포함한 아이들은 모두 그 뒤를 따른다. 수만이는 뒷동산으로 올라가서 가져나온 그것을 먹기 시작하는데, 유일하게 수만이를 동정하고 감쌌던 기수마저도 이미 아이들편에서 수만이를 범인보듯 하는 상황이었다. 먹던 것을 감추려는 수만이를 아이들은 한꺼번에 공격해 그 자리에서 확인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고구마가 아니라 한덩이 누른밥이었다.
수만이는 가난의 수치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기수와 반 아이들은 갑절 부끄러운 마름으로 역시 고개를 들지못한다. 기수는 뺏어들었던 누른밥을 수만이의 손에 다시 쥐어주며 머리를 숙이고 한마디를 건넨다.
'용서해라.'
다른 작품들처럼 유년기의 즐거움이나 귀여운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 작품 역시 가난의 아픔을 친구간의 우정, 신뢰같은 희망적인 요소들을 통해 어느정도 극복하게 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수만이를 생각하는 기수의 의식변화도 보편적인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단편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용서해라' 라고 하는 그 한 마디는 ,확실한 혹은 진실한 어떤 것에 대해 우리아이들이 얼마나 깊은이해를 보이는지를 잘 나타내준다.
현덕 선생님의 몇가지 작품들을 보면서, 우선 어른들의 세계와 비교되는 아이들만의 세계를 어느정도 발견하고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작가는 아주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하는데, 그 가난을 작품속에서 어떻게 그려내었고, 그 속의 아이들에게 또 어떻게 살아갈 힘을 실어주었는가 생각해보니, 그분은 훌륭한 작가임과 동시에 따뜻한 어른의 한사람이었다는 생각이든다.
한편, 현덕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인물들로 하여금 가난에 대해 저항하는 모습을 극히 부분적으로만 찾아볼 수가 있었다. 심지어 어떤 작품은 가난을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정도로만 인식하게 할 만큼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작가의 또다른 작품<나비를 잡는 아버지>에서는 주인공 아이가 마름의 아들에게 절대 굽히려하지 않는 모습이 강하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결국 아버지로 하여금 나비를 잡게 함으로써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보다 가난한 삶에 순응하는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내고 있다.
이런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덕 선생님의 작품은 아주 많이 따뜻하다. 그리고, 정감이 넘친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그들만의 즐거운 세계를 가질 수 있도록 철저하게 배려하고 있어서 잠시나마 어두운 현실을 잊고 무한한 동심을 느끼게 한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당장 모여서 놀아봐도 좋을 것같은 그 시절의 소박한 놀이들은 이런 작품들이 있기에 그 명맥을 유지할수 있는게 아닌가 싶고, 당시의 아이들이 그대로 사용했음직한 말투들을 반복해서 사용한 것도, 웃음이 '픽'하고 날만큼 재미있다. 작가의 월북이후 작품들을 곧 만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