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콧구멍 겨레아동문학선집 2
이주홍 외 지음, 겨레아동문학연구회 엮음 / 보리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뒷집 돼지는 제 새끼까지 몰고 다니며 일을 벌이는데 하필 꼭 즐겨찾는 곳이 종규네 집이다. 새로 담은 장독을 깨 버리고 종규네 주 수입원인 호박 밭에 들어가 넝쿨을 다 끊어 놓았다. 그 호박을 장에 내다 팔아 빚도 갚고 할머니 제사에 쓸 채비를 하고 있던 차에 그 난리가 났으니, 뒷집의 위세에 눌려만 지내던 아버지도 이번엔 기어이 따지러 뒷집 영감을 찾아간다.

'대체 하루 이틀 아니고, 이래서야 없는놈이 먹고 살겠수?' '호! 그래, 그리 됐나? 그렇지만, 짐승이 한일을 어떻게 하누!' 그러면서 오늘 장에 가거든 쌀밥만 먹어 입맛이 없으니 보리를 사다달라고 한다. 기껏 이런 멸시만 당해오던 터라 보리죽이나 먹던 종규지만, 뻔뻔하기 짝이없는 뒷집 영감의 횡포를 꺾어보겠다는 듯 제 활을 갖고 나가 그집 돼지 콧구멍에 쏘아버린다.

화가 난 뒷집 영감이 '이게 무슨 경우야?' 며 쫓아오고 종규는 아버지에게 모질게 한차례 얻어맞지만, '경우는 무슨 경우야?' 하며 이내 다시 활촉을 빼쪽하게 다듬는다. 종규의 아버지는 억울해도 참고 살 수밖에 없는 체념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인네 개가 물어뜯고 있는 소 뼉다귀를 쳐다보고는 식욕의 충동을 느끼는데, 뒷집 영감과 사이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여기에 나타나있다.

글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뒷집 영감과는 채무관계 내지는 기죽을 수 밖에 없는 약점을 종규 아버지가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 뒷집 영감은 종규네 가난한 삶에 가해지는 횡포를 마치 즐기고 있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이라 하면 어른들의 이해관계나 계산따위는 별로 상관치않고 주저없이 아이다운 행동을 해버리고 만다. 이 글을 읽으면 종규는 분명히 돼지의 얄미운 난동보다도 아버지의 고통과 뒷집 영감의 잔인할정도의 뻔뻔함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불상사가 없도록 아버지 뜻에 따라 잠자코 돼지 하는짓을 당하고만 있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아버지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횡포에 저항하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옳은가.

이 이야기와 같은 경우에 우리가 반드시 종규처럼 행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종규가 우리들에게 삶의 한가지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라는 것은 내 자신의 삶에서, 그 한 가운데에 나를 당당히 세우고 주변의 모순이나 문제거리들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려는 최소한의 의지를 담아내는 주체적인 방식일 것이다.

돼지 콧구멍을 활로 쏘았다고 해서 금새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그러한 행위가 바로 심하게 뒤엉킨 실타래를 푸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주홍님의 역작 '돼지콧구멍'을 통해 내 아이들과 더불어 주변의 모든 아이들이 종규처럼 비록 서툴러 잡음은 있을지라도 불의에 적극 대항하는 그런 아이들로 자라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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