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즈를 위하여 - 새롭게 읽는 공산당 선언
황광우.장석준 지음 / 실천문학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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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당시 열광하는 군중의 모습을 보면서 무수한 평가들이 내외신을 장식했었다. 그 함성 속에는 억눌린 무엇이 깃들여있다고도 했고, 한편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광기라고도 했다. 나역시 저 붉은물결이 정말 건전한 시민의식의 모습일까 의구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그 붉은악마 세대들에게 들려주는 어느 사회주의자의 목소리가 이 책에 아주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펼쳐져있다.

대학시절 운동권에서 필독서로 읽혀졌던 몇권의 책들을 기억한다. 바로 그 저자가 황광우님인것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소비에트 몰락이후 스스로 스러지거나 변절한 자칭 사회주의자들을 떠올려볼 때, 저자의 지금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희망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당당히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밝히는 사람이 이 땅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새롭게 읽는 공산당선언'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단지 번듯한 표지때문만이 아니라 정말 새롭게 읽히기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인류 역사발전 단계와 1848년 당시 '선언'이후 우리의 운동역사를 면밀히 비교하고 해석하여 붉은악마 세대가 쉽게 읽고 동의하도록 잘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더구나 그가 치열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을 꿈꾸는 자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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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무스와 방랑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8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지음, 호르스트 렘케 그림, 문성원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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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무스와 방랑자'를 읽으면서 '아! 보편적이지 않은 인물과 그 행동을 보고 우리가 언제나 낯선 느낌으 받는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린이 책의 내용이나 소재가 꼭 보편화 되어야만 평범한 어린이가 쉽게 읽을수 있는것은 아닐겁니다. 우리 어른들이 보기에 평범하다고 보여지는 그런 어린이들이 때로는 모험을 꿈꾸고 방랑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테지요.

저는 이 작품속의 방랑자를 보며 처음에는 암담하고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라고 느꼈지만 라스무스와의 관계나 그 아이에게 행하는 솔직하고 순수한 행동을 보고 '진짜 멋진 방랑자의 여유'를 엿보았습니다. 라스무스는 정말 희망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진정한 행복의 길로 인도하여 준 이는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가진 방랑자였습니다.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는 어린이들의 현실을 볼때, 우리 어른들의 역할을 이 방랑자의 모습에서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나도 언젠가는 훌훌 털어버리고 발길 닿는데로 방랑을 하고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내 주변에 라스무스와 같이 어렵게 희망을 붙들고 싶어하는 아이가 나타난다면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랜은 그런 마음으로 작품속 어린이들을 창조해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천연덕스럽게 그려내었던 것이겠지요. 존경스러운 작가예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삐삐 롱스타킹이라는 기가막힌 인물을 창조해 냈고, 힘겨운 어린이들에게는 라스무스를 만날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우리 작가들도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때까지 작품속에 멋진 친구들을 많이많이 만들어준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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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분도그림우화 26
권정생 지음 / 분도출판사 / 198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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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의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라는 책을 읽다보면 선생의 실제로 생쥐와 한집식구인듯 사는 방안 풍경이 묘사되어있다. 그저 하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아저씨는 얼마나 변변찮았으면 그다지도 하찮은 생쥐 한마리한테 이리저리 휘둘리기 일쑤다. 어쩌면 일부러 시비를 붙기위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고, 인간사를 본격적으로 비꼬려 작정한듯 궁지로 몰아넣는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이 사생활에서 비롯된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한다. 그러나 이 작품속에서 작가는 자신의 현실이 모순덩어리라고 자꾸 얘기하고 있는것 같다. 그 모순을 꼬집어내는 역할을 동물중에서도 가장 푸대접받는 생쥐가 맡고있다. 입담좋은 생쥐에게 당하면서 처음에는 마치 인간의 존엄함을 보이려는 듯 무시하다가 점점 화를 내고, 토라지고 마침내는 생쥐가 달래주어야 할만큼 흥분하고야만다. 생쥐와 부딪히는 이런 모든 상황을 통해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경망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동시에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게 얼마나 함부로 대하는가도 한껏 비틀어 지적한다.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는 어쩌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무시하고 천하게 여기는 그런 사람일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알아가고 고뇌하고 사색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얼마나 생각없이 무지하게 살고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일이다. 생쥐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정말 잘난체하는데 일가견이 있고 복잡하기 이를데없는 동물이라는 것. 정말이지 나는 주변에서 못나보이지 않으려고 잘난체를 얼마나 해왔던가, 소박하게 생각하면 될일을 얼마나 꾸미고 덧붙여 살아왔던가, 이런것들을 생각해보니 이제 마당을 지나가는 생쥐한마리가 더러워서가 아니라 부끄러워 못쳐다볼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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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창비아동문고 4
권정생.손춘익 외 지음, 윤정주 그림 / 창비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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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여성과 아이들이라고 했다. 일제 식민치하의 상황도 제국주의 위업을 달성하려는 일본의 침략과정이라고 봤을 때 이역시 전쟁상황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전쟁중에 어찌 단순한 죽음이 있을까마는 특히 이 작품속 엄마의 경우만 봐도 자신이 직접 전쟁을 통해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일곱남매가 죽거나 자신의 곁을 떠날때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함께 겪어 나간다. 이 작품은 무명 저고리 엄마와 일곱 남매의 험난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민족의 현실과 어린이의 처지를 어떻게 연관지어 생각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작가의 뚜렷한 역사 의식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도입부에서는 물레소리, 베짜는 소리,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즐거운 엄마의 모습을 통해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시절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일곱 아이가 태어나도록까지 그 평화는 이어지고, 그모습 그대로가 엄마의 무명저고리에 사랑스러운 흔적으로 남는다. 그리고는 이내 고통스러운 흔적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나막신을 신고 긴 칼과 총을 가진 일본 군대가 이 땅에 쳐들어오고, 왕비님의 억울한 죽음, 섬나라로 끌려간 왕자님, 갇혀 지내다 맞은 임금님의 운명, 그리고 삼월 만세 소리...... 이러한 구체적 사실들을 배경으로 당시 민중들이 받았음직한 고통들은 엄마와 일곱 남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아빠와 복돌이, 성공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버린 차돌이, 징용에 끌려가 전사한 삼돌이까지 떠나간 사람들은 다시는 엄마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고 다만 가슴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해방을 맞고 큰분이의 결혼과 동시에 이제는 전쟁의 비극속에 내던져진다. 피난길에서 부상을 입은 막돌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 또분이, 무돌이의 군입대와 월남전에서의 죽음 등 근현대사를 망라해서 모든 굵직한 역사적 사건속에서 한 가정이 철저하게 유린되는 과정을 엿보기에 충분하다.

대게 우리는 개인사를 전적으로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고 문제를 해소하려는 마음을 갖고 산다. 하지만, 이 작품속에서 보듯이 한 사람의 인생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그렇게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하다. 대혼란기에 있어서 더욱 그런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현재에 우리역시 정치권력이나 행정체계, 사회적 관습 등에 꽉 묶여 살고있다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다.

또한 과거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일부의 목소리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런 주장에 대해 나는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다. 한부류는 민족의 뼈아픈 과거에 대해 부추기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친일매국)이고, 나머지 한부류는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후자의 경우는 우리 자신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문제인데, 우선은 역사적 진실이 왜곡, 은폐되어왔던 이유가 가장 클 것이고 ,다음은 스스로 알고자하는 노력을 하지않았던 때문일것이다.

끝에「한쪽 다리로 반조각 땅을 딛고선 막돌이...」부분에서 한쪽 다리란 정치, 사회, 교육, 문화등 그 무엇에서도 온전하지 못한 우리의 모습을, 반조각 땅이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런 불구의 모습으로나마 분단조국을 일으킬 희망을 찾게 한다는 강한 주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막돌이가 또분이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끝까지 엄마의 보살핌을 받고 결국은 희망의 주체가 되듯이, 통일을 열망하는 우리세대 역시 그냥 이 자리에 뚝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의 희생의 댓가로 여기에 자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불과 한 세기도 지나지 않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말하기위해 내딛는 첫걸음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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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숲 속의 이쁜이 1 이원수 문학 시리즈 6
이원수 지음 / 웅진주니어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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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소금같은 아침 잠을 뿌리쳐야 하고 명령에 복종만 하며 살아야하는 삶이 싫어 자유를 찾아나선 이쁜이. 이쁜이와 생각은 같으면서도 용기를 내어 뛰쳐 나오지 못한 똘똘이.
둘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여서 이쁜이는 똘똘이와 함께 도망가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똘똘이는 이쁜이만큼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지못하고 그런대로 순응하는 생활을 해가고 있다. 그러다 이웃 나라에서 군대가 쳐 들어와 전쟁이 터지고 자신이 돌보던 아기들을 빼앗기는 과정, 왕눈이라는 반장개미의 폭압등에 견디지 못하던 똘똘이는 자유를 찾아, 이쁜이를 찾아 집을 나온다.

이쁜이와 똘똘이는 함께 보금자리를 꾸미고 남의 아기도 훔쳐다가 키워보려고도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어주지 않아 아기는 곧 죽고만다. 아기의 죽음을 슬퍼하는 두 개미에게 학자할아버지는 그들도 곧 어른이 되어 날개가 자랄 것이고 결혼하여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시간이 지나 이쁜이는 날개가 돋지만 똘똘이는 소식이 없고 함께 지내던 남자개미 '미니'에게 날개가 돋아난다.

미니는 이쁜이를 유혹하고 결혼하려 하지만, 우여 곡절 끝에 날개가 자라난 똘똘이가 나타나 이쁜이와 멋진 결혼식을 치른다. 아기를 낳으러 깊은 굴 속으로 들어간 이쁜이를 위해 홍수를 막아내느라 똘똘이는 초죽음이 되는데, 일전에 이 둘을 방해하던 미니가 나타나 똘똘이의 목을 졸라 흙더미를 덮어 버리고는 이쁜이와 아기들을 남편처럼 맞는다.

똘똘이가 홍수에 죽었다는 미니의 거짓말에 이쁜이는 반신반의하는 상태로 어쩔 수 없이 미니를 남편으로 맞으려는 순간 상처 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나타난 똘똘이, 수 십명의 아이들과 미니 일당을 물리치고 처벌을 결정하는데, 이전의 왕국들이 잔인한 처벌로 일관했던 것과는 달리 평화로운 방법을 택하여 미니 스스로 반성할 기회를 갖게하기 위해 강물에 나뭇잎 배를 띄워 멀리 귀향을 보낸다. 학자할아버지의 마지막 가르침과 이웃나라 평화사절단과의 만남을 통해 앞으로도 영원히 자유롭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갈 것을 맹세한다.

이 작품은 개미를 의인화하여 삶의 개척의지를 보여준다는 기발함과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도 단숨에 읽어내려가게 하는 재미, 그리고 작가의 노련미가 느껴질만큼 아기자기한 구성이 돋보이는 훌륭한 작품이다. 사실 어린 시절에 이 작품을 읽었을 때 '아, 개미도 이렇게 사람들처럼 사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을 만큼 아이들로 하여금 상상의 세계에 푹 빠져들게도 하고,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읽어도 동심으로 일순간 돌아가게 만드는 재미난 힘을 갖는 작품이다. 물론 요즘 아이들은 미국 애니메이션 '벅스라이프' 따위를 보며 개미의 생활을 짐작하지만, 나는 아직 방한구석을 돌아 다니는 개미를 보면 예전에 읽었던 이 작품을 찬찬히 떠올릴 수가 있다.

이쁜이와 똘똘이가 겪어내는 과정은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부닥치게 될 무수한 유혹을 짐작케했고 한편 그들이 대처하는 방식은 시련에 부딪힌 우리 아이들이 그처럼 잘 극복해나가리라는 기대를 하게한다. 작품 말미에 이쁜이와 똘똘이가 미니에게 행하는 평화로운 처벌을 너무 이상적이라는 시각을 가지는 이가 많지만, 세상은 모두 똑같은 사람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두 개미의 행동은 사람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방식들중에는 전혀 다른 방식도 있을수 있고 또 그러한 전혀 다른 생각들이 이 작품에서 평화로운 개미왕국을 만드는것처럼 인간세상에서도 빛을 발하는 무엇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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