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은 하였지만 개과천선은 안되는지라, 거룩한 기념일임에도 불구하고 극장엘 갔다.
평양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 "벌써" 별 감흥도 주지 않고, 서울에서는 게으르고 날씬한 빗방울 몇개가 인도와 차도를 가리지 않고 떨어지고 있었다. "약간 우울한 기분이야'라고 말하기 딱 좋을 기상환경이었다.
영화 <즐거운 인생>은 나에게 일종의 야유다.
"너 즐거워?"하며 매우 은근히 묻는 체하고 있지만, 실상은 "너 즐겁지 않잖아,임마"하며 매우 시비조로 야유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으로 생계수단,혹은 존재 수단을 잃은 데다, 자본주의의 유일한 희망이자 합법적인 도박인 주식에서마저 배신당하고 아내의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넘, 번듯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회사에서 짤리고 아둥바둥 낮엔 택배, 밤엔 대리운전으로 잘나가던 시절의 소비패턴을 근근히 맞춰가는 넘, 아내와 자식들을 조기유학 바람에 실려보내고 적당한 넉살과 그럴싸한 잔재주와 속임수로 중고차를 팔면서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다 아예 버림받는 넘.
객석에 앉아 스크린에 비친 그들을 보면 하나같이 모자라 보이고,측은해 보이고,안타깝게 보이지만 공휴일 오후, 덩그러니 객석에 앉아있는 내 모습 또한 그리 다르지 않을까 하는 쓸쓸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분명 우리 사회의 낙오자이지만,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40대라는 사실이 아마 그 쓸쓸함의 원인일 게다.언젠가는 하늘을 나는 날개가 돋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너무 자주 추락을 경험했고, 너무 자주 날개를 접었던 기억만 남아 있는 이들이다.
현실이라는 무게는 그들의 이륙을 막아섰고, 자본주의적 욕망은 그들의 날개를 꺽은 셈이다.
근데!!의문이....
그들은 '활화산'으로 삶의 지리멸렬함을 박살내며 즐거웠지만, 즐겁지 않은 인생이 즐거워지는 과정이 너무 쉽다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 게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쉽게?
뼈 속 깊이 박힌 욕망이 그리 쉽게 전화되기도 하나?
극장을 나서면 현실이다.
극장안에서는 즐거웠는데, 극장 밖으로 나서기 참 두렵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나만 외로운 것이 아니구나, 나만 힘든게 아니구나 하는, 그렇고 그런 넘들이 지금 대한민국에 우글우글하다는 사실? 그 위안마저 없다면 아마 극장 안에 영원히 갇혀버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