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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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인문과학을 좋아한다. 역사, 지리, 전기, 혹은 역사소설, 전기소설 등등... 이렇듯 있는 현실,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책들을 즐겨 읽는다.

특별한 이해를 요구하지도 않고, 가치기준을 따질 필요도 없는 책들, 그저 꼼꼼히 읽으며 '아하, 그랬구나' 하는 것으로 온전히 내것이 되는 지식들... 그런 내용을 담은 책들만이 여태껏 내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렇지 않은 것들 - 무슨 무슨 공식이라든가, 법칙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내겐 어쩐지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분야이다.

이책 E=mc2는 그런 내가 스스로 사서 본 최초의 자연과학에 관한 책이다. 처음 소개를 접했을 때 느껴졌던 너무도 강렬한 호기심과 호감 때문에 주저없이 주문을 했었다.

그리고 다 읽고 난 지금, 역시 개인적인 선호도라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과학적인 지식, 그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대한 이론에 대해 다루고 있건만 그 틀은 너무도 인문과학적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공식을, 그것을 주인공으로 하여 탄생과 성장과 발달과정을 다룬다는 것... 그 얼마나 신선한 발상인가.

덕분에 정말 독특하고 흥미로운 책이 되기도 하였거니와 나처럼 인문과학적인 틀에 얽매인 사람도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는 진정한 교양서가 된 것 같다.

날마다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이처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책은 정말 드물지 않을까... 자연과학적 지식에 막연한 거리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말 도움이 될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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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열전 1 (반양장) - 내 비록 환쟁이라 불릴지라도
유홍준 지음 / 역사비평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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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홍준님의 글에는 색깔이 있다.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에서 화인열전까지를 주욱 아우르는 그만의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우리 것'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다. 그것을 빼고는 유홍준의 저술을 이야기할 수 없을 듯하다.

지난번 북한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절절히 느꼈던 바이지만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세상에 내놓았다는 이번 저술 <화인열전>에도 또한 그런 그의 애정을 듬뿍 느껴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문득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게 된다. 피카소니 고호니 고갱이니 어린시절 읽었던 외국 화가들의 전기가 아직도 일부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미술사의 거장들에 대해선 정말 몰랐구나.... 전기는 고사하고 이름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정말 몇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우선 반성의 마음을 갖게 된다.

또 한편 그런 무지가 내 개인의 게으름이나 외면 탓이 아니라 접할 수 있는 자료의 부재였음을 확인하고는 일순 안도를, 그리고 다음 순간엔 그런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 대해서 더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는 반성과 속죄(?)의 경건한 마음이 되어 차근차근 책을 읽어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평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우리가 '몰랐던' 내용들을 가득 담고 있다. 책의 본령이 지식의 전달에 있다면, 그 부분에서 완벽한 소재를 선택하고 있는 책이며 내용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충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나마 이름이라도 익히 알고 있는 혜원 신윤복 같은 이가 빠져있다는 것이 바로 그 충실함에 대한 반증이다.

부족한 자료나마 이리 저리 분석하고 조합해서 대중에게 전하고자 애쓰는 저자의 모습은 진실로 감동적이다. 그럼에도 자료의 빈곤으로 인하여 구색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게 된 저자의 심경은 어떠하였을까...

사실 조금 낯간지러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다 보니 비판정신이 너무 결여되어 있지는 않은가 싶은 구석이 제법 있다. 이 이는 이래서 빼어났고 이 이는 저래서 훌륭하고, 더러 당대, 혹은 후대에 세인의 비판을 받았던 부분들조차 너무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리 감싸고 저리 치장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작가의 모습이 안쓰럽기조차 하다.

그것은 어쩌면 전기작가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일지도 모른다. '비판정신이 결여된 전기'라면 과연 전기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라는 질문에 부딪칠 수도 있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미술사가이다. 자신의 분야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기본바탕으로, 대중화에 대한 사명감으로 이루어진 저술임을 알기에 그런 결점은 덮어둘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른 것 다 제쳐 두고라도, 아직 누구도 시도해 본 일이 없는 '우리 나라의 화인 알리기'를 비로소 시작한 책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많은 도판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도판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소장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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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 지옥으로부터의 자유
삐에르 쁘띠필 지음, 장정애 옮김 / 홍익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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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는 흔히, 천재시인 랭보가 방탕한 생활로 인해 젊은 나이에 매독으로 죽었다고 알고 있다. 정확한 정보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얄팍한 지식이란 그렇게도 선정적이기 마련이다.

랭보에 관한 한, 최고의 연구자라는 삐에르 쁘띠피스의 이 책은 우리가 막연하고도 단편적인 정보들로만 알고 있는 시인 랭보의 삶을 꼼꼼하고도 정확하게, 다양한 각도에서 펼쳐보이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떠오르는 한가지 생각은 '참으로 자유롭다'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반항이며, 방탕이며, 유랑이다. 진정 마음가는 대로 살았던 사람, 그가 바로 랭보였던 것이다.

10대의 나이에 이미 시로는 일가를 이루었지만, 그래서 그 시로 인해 지금껏 불멸의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에게 있어서의 시란 인생의 한 부분, 젊은날의 짧은 정열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그는 여행하고 탐구하며, 항상 무언가를 찾아다니며 보내었다. 10대 후반에 집을 나온 이후로 약 20년동안 끊임없이 유럽과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바쁘고 치열하게 살았던 그... (랭보의 여정을 따라다니다 보면 문득 포레스트 검프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 - 전신에 퍼진 암이 다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짧은 생애 동안 걷고 또 걸어, 결국은 다리가 아파 죽음에 이른 사람... 무엇이 그를 그토록이나 걷고 또 걷게 만들었을까. 그렇게 걸어 걸어 그는 결국 원하는 것을 찾았을까.

어찌보면 너무도 무모하고 철없는 인생이지만 그가 진정으로 갈망하고 추구했던 것이 그저 '자유로운 인생'이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록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그가 자신의 생을 후회했으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영혼이라면,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살다 가지 않았을까. 그의 생전에 단 한 번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나 - 생전에도 그런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는 항상 그 자리에서 먼곳에 있었다 - 번번이 의지를 가로막는 병마와 불운들이 참 안타깝게도 느껴지지만 그 모든 것이 자유인으로서의 삶 그 자체였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그렇게 살 수는 없으리라. 그래서도 안될 일이다. (그랬다간 세상이 얼마나 어지러워질까 ^^) 하지만 오늘, 지상에서 가장 자유로웠던 한 영혼을 만난다는 것은 너무도 매력적인 글읽기의 경험이다.

여러 연구자들의 성과를 적절히 제시하고 더러는 반론도 제기해 가면서 정말 풍부한 내용으로 독자의 기대를 채워주는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번역이 조금만 더 쉽고 매끄러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약간은 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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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0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0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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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출간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책 <로마인 이야기>는 내가 가장 아끼고 즐겨읽는 책이다. 매권 나올 때마다 당장 사 보아야만 하고, 주위 사람들한테 억지로라도 돌려서 읽히고 싶은 그런 나의 최고의 책...

언젠가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사를 공부하고 그 저술에 일생을 바치게 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조금만 더 적극적인 성격이었다거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그런 길을 갈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로마사에 대한 관심이 각별했었고, 그런 나의 호기심을 거의 완벽하게 채워주는 가치가 이 책엔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동안 그녀에게 은근히 불만이 많았었다. 왠 설명이 이리도 너절할까? 대체 누가 궁금해 한다고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조곤조곤 따지고 있을까? 독자를 바보로 아는 건가 왠 동어반복이 이리도 심하담? 하는 불평들이 책을 읽다보면 수시로 터져 나오곤 했었던 것이다. 그래서 독자에 대한 친절이 지나치고, 노파심많고 말 많은 아줌마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찾아온 10권과의 만남.... 첫장을 펼쳐 서문을 읽으며 난 갑자기 밀려드는 고마움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시간적 순서에 따른 로마사 서술이었던 앞의 책들과는 달리 로마의 인프라만을 따로 떼내어 시간과 관계없이 다룬 새 책을 독자앞에 내어 놓으면서, 그녀는 정말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왜 써야만 했는지, 쓰기가 어떻게 어려웠는지를 말하며, 독자의 '읽기'에 대한 염려를 가득 내비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를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아, 이 사람은 정말로 독자를 생각하고 있구나. 자신의 '쓰기'의 가치 이상으로 독자의 '읽기'를 중요시하고 있구나. 어렵게 공부하고 힘들여 쓴 만큼 독자가 '잘' 읽어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구나... 그렇게 서문을 읽고 나자, 서문만으로도 너무도 행복한 책읽기가 되었다.

로마인 이야기 10권은 로마인들이 구축한 '인프라스트럭쳐', 즉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기술이다. 지금까지의 시대적 순서에 따른 로마사 서술과는 달리 로마의 가도, 로마의 수도, 로마의 다리, 경기장, 목욕탕 등과 그에 관련된 각종 제도들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로마발전의 원동력이었으며 또한 그러한 부분이야말로 위대한 로마문명이 이룩한 기념비라고 보고 그 기술에만 한권을 고스란히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걱정하듯이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 권만은 '로마사'는 아닐 수도 있다. 앞서의 9권까지나 앞으로 나올 나머지 책들의 부록이나 참고문헌쯤 될까.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그녀가 언제 형식에 구애받았던가.

로마사든 무엇이든, 이 책 또한 새로운 방향에서 로마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으며 충분히 흥미로운 한권의 읽을거리가 되고 있다. 그녀 특유의 꼼꼼함과 예리함으로 길 하나조차도 다각도로 파헤치고 분석하여 그 하나로도 눈앞에 로마인을 보는 듯한 현실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나온 책들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들과 새로운 이야기들을 유려한 솜씨로 버무려내어 충분히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그런 유익한 책읽기의 즐거움보다 내게 중요하고 뿌듯한 것은 이제야 비로소 시오노 나나미 그녀의 진면목을 발견한 듯한 이 느낌이다. 10권을 읽고서야 - 로마인 이야기만으로도 - 진심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배려, 그녀의 따뜻함.... 인정은 하되 친근하지 못했던 '무늬만 애독자'에서 그녀가 주는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친구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 다가올 그녀와의 또다른 만남들은 이전과는 또다른 설렘으로 기다리게 될 일이 너무도 기쁘고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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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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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간지 <씨네21>에 실린, 이 책의 바탕이 된 칼럼들을 비고정적으로나마 지난 몇년간 제법 읽었었다. 그래서 그 파릇하게 날선 독설이 주는 전율과, 간결한 글쓰기의 미학에 대한 찬탄을 꽤 오래 전부터 경험해온 바 있다. 그리고 이제 한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온 그 칼럼들을 기쁨과 설렘으로 맞이하면서, 글쓰기의 성찬이 주는 포만감에 마음껏 젖는다.

그렇다. 나에겐 분명 성찬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더더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처럼 간결한, 너무도 매끈한 글쓰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세상을, 특히 지식인 사회를 향한 시원하디 시원한 비난과 질타. 일견 마구 쓴 듯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회인식의 반듯함... 어느 것 하나 존경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쏟아부은 듯한 막말과 욕설 속에 어쩌면 그리도 엄정한 잣대와 판단이 숨어있을 수 있는지, 그 어휘선택의 적절함에 경이를 느끼게 된다. 그가 받은 국어교육은 내가 받은 그것보다는 한차원 나아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그런 생각이, 스스로 생각하는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작가에 대한 선망과 질투임을 모르지 않는다.

또한 이책이 갖는 미덕은 이런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을 뒷받침할 논리도 없이, 그렇다고 이게 맞노라고 주장할 배짱도 없이 그저 막연한 분노와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만 가진 대다수의 C급 좌파 - 작가의 분류기준에 의거해 표현하자면 - 들에게 '그래, 이거야' 싶은 논리적 뒷받침과 '봐, 내가 맞지' 하는 사회적 자신감을 보태 준다는 것. 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낸 채, 그저 생활에 치어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많은가?) C급 좌파들에게 제법 든든한 이론서가 될 수도 있으리란 얘기다.

작가에게 보내고 싶은 존경이 글쓰기의 형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순수한 욕망에 지나지 않든 혹은 하나의 사상이라 치든 간에 여전히 보수와 우익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만큼 직설적인 화법으로 당당하게 좌파로서의 소신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결코 그의 화려한(?) 글솜씨에 가려져서는 안될 핵심사안이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로 살아간다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며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 아닌가. 이만한 글솜씨라면 굳이 나는 좌파요 하지 않아도 먹고 살기 어렵지 않을 텐데 (글쓰기를 호구지책으로 한다는 건 작가가 당당히 밝힌 바 있다) 또 그렇게 싸워 본들 사실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 끊임없이 칼날을 세워 가며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걸 수 있는 그 용기와 에너지 역시 존경할 만하다. 그런 용기, 그런 에너지 하나 하나가 모여 결국 언젠가는 '변화'라는 열매를 불러올 것을 믿기 때문일까.

아니, 꼭 그런 믿음 아니라도 싸울 일이 있다면 싸워야 함을 안다. 그러지 못하는 대다수의 C급 좌파, 그 속에 내가 있기에 그 용기와 에너지가 이리도 부러운 것일까. 부러움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껴야 더 정직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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