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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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간지 <씨네21>에 실린, 이 책의 바탕이 된 칼럼들을 비고정적으로나마 지난 몇년간 제법 읽었었다. 그래서 그 파릇하게 날선 독설이 주는 전율과, 간결한 글쓰기의 미학에 대한 찬탄을 꽤 오래 전부터 경험해온 바 있다. 그리고 이제 한권의 책으로 묶여져 나온 그 칼럼들을 기쁨과 설렘으로 맞이하면서, 글쓰기의 성찬이 주는 포만감에 마음껏 젖는다.

그렇다. 나에겐 분명 성찬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군더더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처럼 간결한, 너무도 매끈한 글쓰기.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세상을, 특히 지식인 사회를 향한 시원하디 시원한 비난과 질타. 일견 마구 쓴 듯 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사회인식의 반듯함... 어느 것 하나 존경스럽지 않은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쏟아부은 듯한 막말과 욕설 속에 어쩌면 그리도 엄정한 잣대와 판단이 숨어있을 수 있는지, 그 어휘선택의 적절함에 경이를 느끼게 된다. 그가 받은 국어교육은 내가 받은 그것보다는 한차원 나아간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론 그런 생각이, 스스로 생각하는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는 작가에 대한 선망과 질투임을 모르지 않는다.

또한 이책이 갖는 미덕은 이런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을 뒷받침할 논리도 없이, 그렇다고 이게 맞노라고 주장할 배짱도 없이 그저 막연한 분노와 '이게 아닌데...'하는 생각만 가진 대다수의 C급 좌파 - 작가의 분류기준에 의거해 표현하자면 - 들에게 '그래, 이거야' 싶은 논리적 뒷받침과 '봐, 내가 맞지' 하는 사회적 자신감을 보태 준다는 것. 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낸 채, 그저 생활에 치어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많은가?) C급 좌파들에게 제법 든든한 이론서가 될 수도 있으리란 얘기다.

작가에게 보내고 싶은 존경이 글쓰기의 형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순수한 욕망에 지나지 않든 혹은 하나의 사상이라 치든 간에 여전히 보수와 우익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만큼 직설적인 화법으로 당당하게 좌파로서의 소신을 피력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결코 그의 화려한(?) 글솜씨에 가려져서는 안될 핵심사안이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로 살아간다는 건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며 여전히 위험천만한 일이 아닌가. 이만한 글솜씨라면 굳이 나는 좌파요 하지 않아도 먹고 살기 어렵지 않을 텐데 (글쓰기를 호구지책으로 한다는 건 작가가 당당히 밝힌 바 있다) 또 그렇게 싸워 본들 사실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는 걸 잘 알면서, 끊임없이 칼날을 세워 가며 세상을 향해 싸움을 걸 수 있는 그 용기와 에너지 역시 존경할 만하다. 그런 용기, 그런 에너지 하나 하나가 모여 결국 언젠가는 '변화'라는 열매를 불러올 것을 믿기 때문일까.

아니, 꼭 그런 믿음 아니라도 싸울 일이 있다면 싸워야 함을 안다. 그러지 못하는 대다수의 C급 좌파, 그 속에 내가 있기에 그 용기와 에너지가 이리도 부러운 것일까. 부러움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느껴야 더 정직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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