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나라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6
모리스 샌닥 지음, 강무홍 옮김 / 시공주니어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삼십년 넘게 살면서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

"너도 화낼 줄 아니?" "생전 화 한번 안낼 사람 같은데..."

나름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던 나이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는 초짜엄마인 나는 아주 자주 이성을 잃고 버럭버럭 거린다.

아이가 이유없이 찡찡댈 때인데... 불과 몇 분만 지나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응가가 하고 싶은데 먹을 게 부족하여 밀어내지 못하고 있다거나, 잠을 많이 잤지만 그래도 졸립다거나, 무지하게 심심한데 엄마는 집안일 한답시고 자기한테 관심이 없다거나, 그도 아니면 방금 전에 맘마를 먹었음에도 배가 안찼다거나 등등 삼천오백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이유를 알면 꼬리를 내리지만 그 전까지는 두 눈을 부릅뜨고 버럭 소리부터 친다. 아이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내게 치대거나 애걸하기도 하고, 입술을 쭈삣거리며 울기도 하고, 혹은 딴청을 부리며 자기 세계에 빠져들기도 한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중요한 시발점이 바로 이 순간이다.

온갖 장난을 쳐대는 아이에게 엄마가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 버럭 소리치자 아이는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고 응대한다. 그리고 방안에 갇힌 아이는 엄마의 명명대로 괴물이 되어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빠져든다.

잔소리쟁이 엄마가 없는 덕에 마음껏 놀고 춤추고 즐기지만 결국 엄마에게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아이... 그리고 아이를 기다리는 따스한 저녁밥...

엄마와 아이 관계의 패턴을 너무나 정확히 짚어낸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나보다 먼저 그림동화의 세계에 푹 빠진 시댁 형님이 추천한 책이다.

우리 시댁에서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명성이 높은 형님답게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 거야!"라는 한 마디가 너무나 아이들의 생생한 대사를 반영한다며 이 책을 높이 평가했지만, 아직 아이의 세계를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엄마의 곤혹스러움에 집착하는 나로서는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는 엄마의 절절한 외침 탓에 이 책을 높이 사고 싶다.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에서 "너희들은 돼지야!"라는 쪽지와 함께 집을 나갔던 엄마가 결국엔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엄마는 따스한 밥 한 그릇으로 아이에게 미안함과 사랑을 전함으로써 나의 일상을 완벽 재연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따스한 밥 한 그릇은 엄마의 백기 투항이 아니라 일종의 휴전 선언임을...

그리고 전쟁과 휴전을 반복하며, 괴물들이 사는 나라와 인간들이 사는 나라를 오가며 아이와 함께 성장해 나갈 것임을.

 

사족>

소설책을 읽을 때 무슨무슨 수상집 작품들을 유독 눈여겨 보는 애아빠에게 핀잔을 주곤 했는데 그림책을 고를 때 수상작에 솔깃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문득문득 놀라곤 한다. 칼데콧 상이니 케이트 그린어웨이 상이니 안데르센 상이니 등등. 그리고 그런 상이 빚좋은 개살구만은 아님을 번번이 깨닫는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모리스 샌닥에게 칼테콧 상을 안긴 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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