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을 날 것으로 낳았습니다


혹시 저를 알고 계신 지인知人님들 놀라실까 봐

노파심老婆心에서 알려드리니, 그러려니 하지 마시고 

한 번쯤 신명 나게 놀라 보세요. 


시상詩想을 잉태한 배가 앞산 등성이처럼 불러오더니, 

방금 한가위 보름달 꼭 닮은 이란성 쌍둥이 낳았답니다. 

올 가을 대추나무 연 걸리듯 흔들며 낳으려는데 

뜨거운 여름 정말 자궁 안이 덥다며 반삭 둥이로 미리 나왔습죠.


'축하할 일이로다.'

'젊지 않은 나이에 초산이라......'

'거기다 이란성 쌍둥이라.' 

 

흔히들 추켜 세워 주는 어느 날,

안사람 전화받는 소리가 귀에 딱 걸렸지요.


'언니, 잘 지내?'

'응, 우리 서방님 요즘 시집 냈어. 한 권 보내줄게. '

'아니, 사업한답시고 거드름 피던 사람이 시를 쓰다니? 무슨 변고辨告야!'

'우선 시집을 한 권 내고 신춘문예로 등단한대.'

'어머, 글은 아무나 쓰는 줄 아는감? 뭔 글재주가 있다구?'

'사업 재주는 뭐 있는가벼, 평생 망해 먹었는디'

'그럼, 시 쓰려구 사업 말아 먹었는 감?'

'그이 말이, 시인은 천작天作이라 타고나는 거래. '


두 여인네의 안부는 야릇한 미묘微妙로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래, 맞다, 맞아. 차제에 내 변명다운 넋두리 한 번 늘어놓자. 

사업은 사업 달란트 모자라 망했을 망정 과연 시혼詩魂이라는 거,

심詩心이라는 거, 내 피에 흐르고 있는지 알아보는 중이야. 

도전이 특기인 건 날 아는 사람이면 모두 다 잘 알잖아. 

시문학詩文學을 공부하던지, 깊은 산사山寺에 틀어박혀 

수행하는 고된 스님이라도 될걸 그랬지?

그럼 지금 쯤 누구만 한 대가大家가 되어 

노벨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유명 시인되어 있을 터. 

어쩌자고 못난 자신을 이리 높게 추켜 세우시나.' 


염불외듯 중얼중얼 혼자말 ........

이게 모두 평생 내 탓이고, 내 탈이고, 걸걸이었지.

누구는 정말 웃긴다고 날 보고 말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시詩라고 씁지요.


시인도 모르는 시詩라

독자는 더군다나 이해 못하는 시詩라
시말이 그럭저럭 널브러져

시詩가 될까 말까 한 시시한 시詩라

그냥저냥 난해한 잡글일 뿐이라


허허, 어느 누가 그러더냐?
시詩를 안다는 시인이냐?
시詩란 무엇인가? 

시詩를 정의한 평론가냐? 


시詩는 감동이라는데

행선行禪하는 수도승 염불念佛이 

적막寂寞한 산사山寺 처마 끝을 지날 때

잠자던 새벽 풍경風磬이 
때 맞추어 울었다는데


시시한 내 시詩 하나가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되어

이승 사람들 간담을 서늘케

속세의 쇠북종 여럿 울렸으니

이 얼마나 지극한 감동이냐


시詩야!

너는 이 세상世上 구별된 존재이려니

그래, 남의 눈치코치 볼 것 없다

시詩야! 네 멋대로 잘 살거라


뉴욕 동편 한 귀퉁이에서  유 준/Jun Yo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