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를 처음 만났을 때, 혁명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깨달았었다.  페루의 구리광산, 아메리카 최고最高의 굴뚝 위에서 프롤레타리아의 빈한한 조각집들을 내려다보며 분노의 눈빛을 이글거렸던 체. 나는 부평역 뒷골목 반지하 술집, 'Habana'에서의 그 첫만남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내나이 열아홉이었고 사람들은 취해있었다. 

 

 장식같지도 않아보이는 싸구려 티크 책장 속에 누렇게 표지가 뜬 그 기록은 놀랍게도 타자기로 타이핑 된 필사본이었다.  80년대 어느 학생운동가에게서 분실되었을 그 책은 진지함의 여부를 간파하기 힘든 술집주인의 소유에 근사했었다. 글자의 크고작음도 없는, 오로지 일정한 크기의 텍스트들로만 가득찬 그 두꺼운 보물을 읽기위해 나는 사흘정도를 쉬지 않고 들락거렸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결국 그 책을 끝까지 읽는 데에 실패했었고 차츰 그에대해 잊어가고 있었다.

 

 너무도 우연히 그의 사진을 보게 된 것은 몇년이 지난 어느 여름이었다. 1998년, 상병 계급장을 막 달았던 그 해 여름 부대의 교보재(교육보조재료)창고의 낡은 교본 속에 그가 있었다. 쿠바 공산정권수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악적 카스트로와 함께 말이다. 그의 얼굴은 상상 속에서 그려지던 투박함과는 한참이나 먼 지극한 부드러움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는 이념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채로 제대후 그의 자료들을 기웃거리곤 했었다. 잠깐의 기간동안이었다. 그에 대한 것들을 대부분 인식했었지만 이내 또다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체에 대한 막연함 '부러움'과 '질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처럼 꽉 채워진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나,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나 속박당하던 나. 뭐 그런 것들이 그를 모함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체적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다른 무엇도 아닌 기억 속 그의 사진 한 장 속에 체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아버리는 무책임한 방법으로 말이다. 

 

 길지 않은 내 삶 속에 이따금씩 소나기처럼 찾아와 나를 적시곤 했던 체 게바라. 엊그제 문득 책장 속에서 붉은 색 책 한 권이 눈에 띄자 나는 이제와 다시금 저 열병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새천년이 시작되던 무렵 경인문고 신간코너에서 집어들었던 그의 붉은 색 평전.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잊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순간순간 그에 대한 재해석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자신을 잊고 지내오던 이 배신자를 용서하는 듯한 그 눈빛, 예언가의 머나먼 절망에의 응시와도 같은 그 눈빛. 그것은 마치 나에대한 체의 갈구와도 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혁명이 그리웠던 게다. 

 

 다시 얼마나 지나갈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나는 사회주의자는 아니라는 것과 '별이 없는 꿈은 꿈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던 저 총 든 휴머니스트를 사랑한다는 것과 자신 안에서의 혁명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남자 에르네스토를 조금은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당분간 나는 매일 밤, 계속 그렇게 열병 속을 헤매일 작정이다. 그를 만나든 혹은 나를 만나든, 사진 속 암묵의 외침처럼 저 '영원한 승리를 향해서'든 말이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인간은 꿈의 세계에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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